제 목 : 오늘도 하수구에 걸린 한 움큼 머리카락을 걷어낸다 | 조회수 : 1069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19-07-19 |
어느 날 샤워를 하는데 바닥에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다. 급기야 하수구 망을 들어내고 못 쓰는 칫솔로 구멍 한 번 휘저어, 한 움큼의 머리카락을 걷어 올리고서야 뚫린다. 물론 이런 일은 이번만이 아니다. 이렇게 머리카락 뭉치 걷어내는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아마도 이런 일은 여느 집이나 비슷할 테지만, 아무튼 이렇게 나도 나이 들어가는 대열을 피할 수 없음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그러고 보니 어느 날 아침에 비몽사몽간 일어나 면도기에 치약을 짜려했던 일은 벌써 몇 년 전이다. 퇴근하면서 주차를 지하 1층에 했는지 2층에 했는지 다음날 아침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아 지하 2층에 갔다가 다시 지하 1층으로 올라오는 일, 지하 1층으로 갔다가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일은 흔한 일상이다. 그런가 하면 휴대폰을 사택에 둔 채 가다가 나중에 생각이 나서 다시 집으로 차를 돌렸던 일, 반대로 휴대폰을 차 안에 둔 채 집으로 올라갔다가 나중에 생각이 나서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와 가져갔던 일등은 이제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요즘은 거기에 추가하여 매일 하루에 한 번 먹는 약마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리고, 너무나 익숙한 성도의 이름마저도 얼굴을 면전에서 보고서도 생각나질 않아 속으로 당황하는 일도 가끔 발생하고 있다. 세교성전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목사님은 염색 안하세요?”라고 묻는 성도 역시 언제부터인가 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정말 사소한 일에도 섭섭한 마음이 일고 있다. 전에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 기분 좋게 쿨하게 넘겼던 일.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그것들이 마음에 탁탁 걸리니 어쩌면 좋으랴. 그래도 성경말씀만은 아직 초롱초롱하고, 하나님께만은 섭섭한 게 없으니 그건 감사할 일이다.
물론 이런 얘기를 주보에까지 쓰고 있는 나를, 우리 성도님들은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벌써 그 과정을 이미 거쳐 오신 분들은 “이미 난 옛날부터 그랬소. 뭘 이제 그러시오? 그 정도 갖고 뭘 그러시오? 난 더 심한데...”하실 분도 분명 계실 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백을 여기에까지 늘어놓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런 분들이 내 가족 중에도, 내 주변에도 있으니 그들을 잘 이해해드리자는 취지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생각이 많아지고, 몸이 느려진다는 거다. 그러다보면 잘 까먹고 잘 놓치는 일은 자연스레 늘어난다. 오래된 기억은 선명한데 방금 일은 기억 안 난다. 익숙한 이름마저 생각 안난다. 그러니 이건 그들 잘못이 아니다.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해해드려야 할 부분이다. 오히려 옆에서 챙겨드리고 도와드려야 할 몫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이여. 어른들한테 너무 다그치지 말아라. 강물은 최선을 다해 흐르고 있으니 더 빨리 흐르라고 재촉도 말아라. 개울물 시냇물이야 당연히 빠르게 흐를 수밖에 없지만, 바다를 앞둔 큰 강물의 유속이 느린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또 하나, 이런 변화들을 겪다보니 내가 더 겸손해지는 것 같다. 나 역시도 빠르고 명석하고 기민할 때에는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려운 것도, 거칠 것도 없었다. 뛰어다니면 되고, 밤 새면 되고, 노력하면 다 되었다. 도전 못할 게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겸손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좀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가끔 한계에도 직면하니 어느 새 겸손이 몸에 배어간다. 더 하나님을 붙들게 되고, 더 타인을 귀히 여기게 된다. 그래서 고맙다. 그래서 은혜다.
이렇게 오늘도 하수구에 걸린 한 움큼 머리카락을 걷어내면서 주님이 그동안 내게 주셨던 것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이제 하나씩 가져가실 것에 대한 ‘내려놓음’이 나를 더 깊은 은혜의 바다로 헤엄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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