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다 쓴 샴푸 다섯 번 더 쓰기 | 조회수 : 1257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19-12-19 |
아내와 결혼하고 지금까지 살면서 확실히 배운 것 중 하나. ‘다 쓴 치약 다시 쓰기’와 ‘다 쓴 샴푸 또 쓰기.’
얼마 전 아침, 그동안 꾹꾹 누르기만 해도 줄줄 잘만 나오던 샴푸가 어느 새 퍽퍽 콧방귀만 끼며 나오는 게 영 시원찮더니, 결국은 명을 다했는지 아무리 눌러도 도무지 나오질 않는다. 바로 이럴 때, 예전의 나 같았으면 아내에게 얼른 새 샴푸 달랬을 거다. 하지만 언제부턴가는 그 일을 잠시 미루고, 그때부터 최후의 한 방울까지 다 쓰기 작전에 돌입한다.
우선 뚜껑을 열어 노즐을 꺼내 올려보면 그 노즐 안에도 상당량의 샴푸액이 들어있다. 그것만으로도 한번은 더 쓰더라. 하지만 그걸로 끝난 건 아니다. 아직도 샴푸통 바닥 최심부에는 노즐로 미처 길어 올리지 못한 샴푸액이 상당하다. 그때부터는 약간의 물을 넣고는 뒤집어 톡톡 손바닥에 털어준다. 그러면 여전히 제법 쓸만한 샴푸액이 흘러내린다. 다음날엔 좀 더 많은 물을 부어 털어본다. 그러면 역시 또 나온다. 그렇게 해서 거의 맹물이 나올 만큼까지 쓴다. 그렇게 다섯 번은 더 쓴 것 같다.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쓴 뒤 재활용품 통에 버리니 기분이 너무나 좋더라.
그런 중에 이번엔 치약까지도 홀쭉해졌음이 보인다. 이젠 아랫부분부터 돌돌 말아 걷어 올려 힘주지 않으면 좀처럼 입으로 토해내질 않는다. 이 역시 예전의 나 같았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고 아내에게 새것만 달라 했을 터. 하지만 이젠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내 가위를 가져다 치약의 목을 싹둑 자른다. 그러면 윗부분 입부터 목 사이에 여전히 꽉 차 있는 치약이 보인다.
그 뿐인가? 목 자른 치약용기의 아랫도리는 훨씬 더 많은 양의 치약이 붙어있다. 그것을 싹싹 돌려가며 벽면을 긁어 묻혀 먹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그렇게 치약 역시도 대여섯 번을 더 쓴다.
그렇게 완전히 마르고 닳도록 긁어낸 뒤 쓰레기통에 버리니 물자 절약에 환경 보존까지 된 것 같아 그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다. 그러니 할 수만 있다면 이 풍요로운 사회에서도 절약의 미덕을 간직함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채 보름밖에 남지 않은 2019년도가 보인다. 정말이지 어느 새 이렇게 세월만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 많은 날 동안 대체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 아까운 시간들을 더 의미있고 더 가치있게 보내지 못했다.
그러니 이 남은 보름동안 뭘 더 할 수 있으랴. ‘이왕 이렇게 된 거, 남은 날은 대충 보내고 새해부터 다시 큰 맘 먹고 잘 하면 되지’란 생각만 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것만이 최선일까? 남은 보름이 그냥 버려도 될 만큼 적은 시간일까? 결코 아니다. 얼마든지 우린 한 시간만으로도 많은 일을 이룰 수 있고, 하루의 시간만으로도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다. 다 쓴 샴푸 다섯 번 더 쓰고, 다 쓴 치약 여섯 번 더 쓸 방법도 있듯이 아직 우리에겐 보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다. 날수로는 15일, 시간(時間)으로는 360시간, 분(分)으로는 21,600분, 초(秒)로는 무려 1,296,000초.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알차게 살자. 밀도 있게 살자. 다시는 오지 않을 이 날들을 후회 없이 보내자. 맘껏 사랑하고, 맘껏 땀 흘리고, 맘껏 예배하고, 맘껏 섬기자. 스페인 속담에 ‘죽을 때까지는 모든 게 다 삶’(Until death, it is all life)이라 했다. 그리스 속담에는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산다’(We live, not as we wish, but as we can)고도 했다. 그러니 남은 보름동안 다시 파이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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