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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마음 조회수 : 67
  작성자 : 김종훈 작성일 : 2020-01-17



지난 목요일 오후, 그동안 읽어오다가 마무리를 못하고 덮어두었던 책 한 권을 다시 마저 읽다가 눈에 넣은 문구 몇 개가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 그것은 천로역정의 작가 존 번연(John Bunyan)의 글인데, ‘인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특별한 죄 몇 가지에 대한 내용이다.

그 첫째는 가볍고 음탕한 마음이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심판은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기면서도 세상의 영적 간음에 빠지는 것에는 재빠른 마음을 두고 한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 되는 지적이다. 바로 이 마음 때문에 아담과 하와도 에덴을 잃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그들과 다를 바 없으니, 대체 인간은 뭘 얼마나 더 잃어야 정신을 차릴까? 그러니 얼른 회개하자. 죄는 거칠 때 그만 두어야지 놔두면 금세 부드러워진다. 미울 때 그만 두어야지 놔두면 금세 사랑스러워진다. 멀리 있을 때 멀리해야지 놔두면 금세 코앞에 와있다. 어려워 보일 때 그만 두어야지 놔두면 금세 쉬워진다. 무서울 때 무서워해야지 놔두면 금세 만만해진다. ‘딱 이번 한 번만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만 두어야지 안 그러면 반복한다.

둘째는 탐욕적인 마음이다. 이는 세상 것은 쌓아가고 그것으로 인한 부유함은 갈망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것에는 무관심한 마음이다. 그래서 현대인은 오늘도 바쁘다. 이젠 예배도 그 핑계라면 빠져도 되는 것임을 당연시한다. 그러니 육적부유(肉的富有)이야 차곡차곡 쌓여가겠지만, ‘영적부요(靈的婦謠)은 점점 메마르고 텅텅 비어간다.

셋째는 믿지 않는 마음이다. 이는 하나님과 천국과 지옥은 사실이 아니며 나와도 상관없는 것처럼 여기는 마음이다. 사실 이 마음이 모든 죄와 악의 원인이건만, 참 어리석다. 뭐든지 내가 아니면 아닌 것인가.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진리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다.

넷째는 경홀히 여기는 마음이다. 이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은 바라면서도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애써 무시하려는 마음이다. 나는 용서받고 싶지만, 남은 절대 용서못하는 그런 마음이라고나 할까? 참 이중적이고 이기적이다. 하나님께 바라는 만큼 나도 그에 맞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정직한 신앙인이다.

다섯째는 교만하고 불평하는 마음이다. 이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믿고 겸손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혜의 우월함을 더 믿고는 하나님의 방법보다 자신의 방법을 더 고수하려는 마음이다. 그렇게 해놓고서도 일이 잘못되면 또 하나님께 따진다. 참 나, 이러고도 그를 신앙인이라 할 수 있을까?

여섯째는 주장하고 질투하는 마음이다. 이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관리자나 심판자가 되어 자기가 믿는 의와 권리를 주장하는 마음이다. 그러면서도 또 죄인의 형통은 부러워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뜻과 방법과 결과를 끝까지 신뢰해야 죄인의 형통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일곱째는 율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이는 기도나 선행, 자기 부인과 같은 영적제자도를 훈련하는 것에 대해 게으르거나 그 필요성조차 모르는 마음이다. 그래서 오래 믿었지만 성장도 성숙도 없는 것이다. 벌써 우리가 다 완성되었나? 아니다.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할 과제는 죽을 때까지 있다.

이렇게 읽으니, 과연 존 번연의 묵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어쩜 이리도 내 부끄러움을 정확히 간파하는지... 그러니 우리 모두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하자. 변화를 받자.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해로운 두려움이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유익한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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