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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뉴노멀(new normal)인가? 어브노멀(abnormal)인가? 조회수 : 1049
  작성자 : 김종훈 작성일 : 2020-07-04



대처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다는 뜻이다. 예컨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조치 같은 것. 마스크 쓰고, 손세정제 바르고, 모르는 사람과의 밀접 접촉도 당분간 피하는 것 등을 일컫는다.

따라서 이런 생각지도 못한 위기나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에는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처는 반드시 필요하다. 가능한 마음과 지혜를 모아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고, 이에 대해선 모든 공동체도 협력해야 한다. 현명한 대처가 현명한 극복을 가능케 한다.

그러다 보면 이제 어느 정도 적응도 된다. ‘적응이란,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에 잘 맞추어 가는 것을 말하는데, 처음에야 불편하고 어색하고 힘들겠지만, 재빨리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이를 받아들이면, 이는 우리의 건강도 지키는 일이니 그로 인한 불편함과 어색함과 힘듦도 조금씩은 줄일 수 있다.

그래서 교회도 그랬다. 갑작스레 찾아온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가장 극심했던 두 달은 재빨리 온라인예배로도 전환했다. 그 외 모임은 다 취소했다. 그게 당시로는 현명한 대처였기 때문이다. 이에 성도들도 잘 적응해주셔서 고맙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니, 이런 발 빠른 대처와 현명한 적응이 생각지도 않은 문제를 가져다준 건 아닌지 조금은 염려된다. 예컨대 온라인예배 중계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야 어색했지만 이제 몇 번 해보니 그런대로 괜찮네. 외려 아침 일찍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피곤하게 옷 차려입지 않아도 되고, 애들 힘들게 챙기지 않아도 되니 너무 좋네. 복잡한 교회 주차 안 해도 되고, 1시간 다닥다닥 붙어 앉는 불편함도 없고, 편하게 잠옷만 입고서 예배 봐도 되고, 누워서 봐도 되고, 딱 설교만 들으면 되고, 헌금 안 챙겨도 되고, 이런 봉사 저런 봉사도 안 해도 되고, 불편한 사람 안 만나도 되고, 교회 안갔다는 부담도 없고 참 좋네. 앞으로도 쭉 이대로 갔으면 좋겠네라는 생각이 혹 들 수도 있겠다는 염려.

? 결국 연약한 인간은 처음 몇 번의 어색함만 넘어서면 곧 적응하게 되고, 곧 또 익숙해져서 어느새 그것이 뉴노멀(new normal)인양 만들어버리니까. 더 이상 어브노멀(abnormal)로 여기지 않으니까.

분명 성경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4-25) 했는데, 외려 거꾸로 가는 듯해서 하는 소리다.

물론 이런 전염병 창궐한 시대에 성도들 건강까지 위협하며 무엇을 강행할 마음은 없다. 최대한 배려하고 준비하고 서비스도 제공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 전염병 창궐로 자연과 만남과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참 많은 깨달음도 얻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한다고, 직접 할 수 없으면 간접적으로라도, 대면으로 못하면 비대면으로라도, 오프라인이 안되면 온라인으로라도 할 수 있는 역량도 키웠다.

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정상은 아니잖나? 최선은 아니잖나? 어디까지나 차선이지 않나? 분명 예배는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이다. 이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브노멀(abnormal)을 뉴노멀(new normal)로 여기진 말았으면 좋겠다. 차선을 최선인양 착각은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직장에서 하도 교회 갔냐고 체크하는 바람에 교회는 나오진 못했지만, 주중에 개인적으로라도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가시는 분이 있어 고맙다. 교회에 못 와서 헌금도 못 드렸다며 그간의 헌금까지도 다 모아 가져오는 분도 있으니 눈물 난다. 그래도 특별금향로기도회만큼은 가야지 마음 먹고는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예배당에 나와 그 뜨거운 눈물의 기도를 드리심도 고맙다. 이렇게 비정상 속에서도 정상을 잊지 않으려는 성도들, ‘대처해가고 적응은 하되, ‘익숙해지지는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성도들이 있어 고맙다. 주께서 그런 분들을 반드시 복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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