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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영상  Weekly Sermon

담임목사 칼럼  Pastor Column

내 인생의 첫 단어
오늘은 우리 교회 어르신들께는 좀 죄송할 수도있는 얘기 하나 하련다. 이미 그분들에게는 벌써 익숙해지셨을 일이지만, 내겐 처음 맞닥뜨리는 일이니 정중히 이해를 부탁드린다. 지난 주일 난, 내 생애 처음으로 들어보는 말 한마디를 궐동성전 주차장에서 들었다. “목사님도 이젠 머리가 ‘반백’(半白)이시네요”... “목사님, 이젠 흰머리가 조금씩 보여요”라고 처음 그 얘기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백’이라니... ㅠㅠ... 참 기분이 묘했다. 돌아보니 세교성전 입당 후부터 부쩍 그리된 것 같은데, 그간 나도 힘에 많이 부치긴 했나 보다. 그게 머리카락 색깔로도 나타나버렸다. 하지만 그 댓가로 하나님이 이만큼 은혜 주신 것도 분명하니 그냥 영광스런 면류관쯤으로 여기련다. 두 번짼 ‘불면증’이다. 처음엔 누워도 잠이 잘 들지 않는 형태로 시작되더니, 요즘은 새벽 2-3시경에 깨면 다시 더 이상은 잠이 들지 않는 형태로 변형되었다. ‘불면증’이란 말, 이거야말로 남 얘기로만 알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게도 찾아왔다. 아직 뭐 심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냥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니 그리 된 것 같다. 하여간 나름 기도도 하고, 자세를 바꿔 누워도 보지만 쉽지는 않다. 그래서인가? 금향로기도회 때마다 “짧은 잠에도 단잠 자게 해 달라”고 했던 나의 기도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필요한 은혜임을 요즘 더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이래저래 잠 못 이루는 성도들 생각도 더불어 난다. 세 번짼 ‘안경’이다. 아직 평상시나 강단에서까지 쓸 정도는 아니지만, 이제 책볼 때만큼은 조금씩 필요함을 느낀다. 확실히 예전 같지 않고, 눈꺼풀도 무겁고, 자주 깜박이는 버릇까지도 생겼다. 설교할 때 강단에 서서 보는 모니터 글씨까지도 어떨 땐 희미하다. 이참에 글씨를 다시 키워야 하나, 아니면 설교 때에도 안경을 써야 하나? 아~ 소실 적엔 2.0까지도 뽐냈던 육백만불의 사나이 스티브 오스틴의 시력은 어데로 갔나? 비 오는 날 버스정류장에서 제일 뒤에 오는 버스 번호까지 정확히 맞춰 친구들보다 먼저 뛰어갔던 그 시력은 어데로 갔나? 아무튼 안구운동도 더 열심히 해서, 안경 쓰고 강단에 서는 날만큼은 최대한 늦춰 보련다. 네 번짼 ‘오십견’(五十肩)이다. 한 달 전부터 원인도 없이 오른쪽 어깨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부쩍 요즘 심해졌다. 특히 샤워할 때 오른손으로는 등 밀기도 어려워져 결국 병원을 찾았다.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 말씀이 ‘오십견’이란다. 이 또한 내 인생에 처음 들어본 말. 5,6년 전인가? 동네 병원에 감기몸살로 갔는데, 순서를 기다리는 나에게 간호사가 아직 40대인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적잖은 충격 먹었을 때가 다시 생각날 만큼 이번 일 또한 충격이다. 아니 왜 그 간호사분은 “선생님”, “환자분”, “김종훈님” 등의 호칭을 다 놔두고 날 “아버님”이라고 불렀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만, 지금은 어딜 가도 그러려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무튼 당분간은 이렇게 동통기, 유착기를 거쳐 회복기에 이를 때까지 치료도 꾸준히 받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할 상황. 그래서일까? 지난주일 예배를 드리며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를 부르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맘껏 두 손 들고 찬양할 수 있는 것도 어찌나 소중하던지. 그래서 느낀 것. 이렇게 인생은 수많은 첫 단어들을 해변의 파도처럼 맞닥뜨리며 산다. 앞으로도 더 많은 첫 단어는 기다리고 있으리. 거기엔 나를 기쁘게 하는 단어도 있겠지만, 나를 슬프게 하는 단어들도 있으리. 그러니 이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대처하느냐, 무슨 감사를 찾고, 어떤 계획을 찾느냐’는 영적 민감함은 더욱 필요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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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나를 복음의 도구로 써 주소서
문득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가 지었다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Seigneur, faites de moi un instrument de votress paix.)가 묵상 되는 아침, 이에 나는 “주여 나를 복음의 도구로 써주소서”란 제목으로 다시 쓴다. 뭘 하든, 누굴 만나든, 어딜 가든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기도가 나를 통해 현실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여, 나를 복음의 도구로 써주소서 눈, 나의 두 눈은 언제나 당신의 얼굴만 바라게 하소서. 귀, 나의 두 귀는 언제나 당신의 음성만 듣게 하소서. 입, 나의 입은 언제나 당신의 사랑만 전하게 하소서. 손, 나의 두 손은 언제나 눌린 자, 갇힌 자, 포로 된 자 향하게 하소서. 발, 나의 두 발은 언제나 당신이 보내시는 곳 가게 하소서. 촛불, 내가 없어질수록 세상은 환하게 하소서. 소금, 내가 녹아질수록 세상은 맛나게 하소서. 메가폰, 나를 통해 당신의 복음이 커지게 하소서. 지우개, 나를 통해 이웃의 상처가 아물게 하소서. 펜, 오늘도 당신의 메시지만 쓰게 하소서. 붓, 오늘도 당신의 아름다움만 그리게 하소서. 악기, 오늘도 당신의 사랑만 연주하게 하소서. 편지, 오늘도 당신의 소식만 전해지게 하소서. 항아리, 내 영혼이복음의 비밀담긴 쿰란의 항아리 같게 하소서. 마중물, 내 인생이복음의 생수솟는 마중물 같게 하소서. 깃발, 복음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복음의 깃발 되게 하소서. 종, 사랑이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사랑의 종소리 되게 하소서. 기둥, 주의 성전이 든든하도록 예배와 사명의 자리를 지켜내게 하소서. 방패, 주의 성전이 안전하도록 이단과 세상 문화로부터 지켜내게 하소서. 의자, 피곤한 이웃의 쉴 곳 되게 하소서. 지팡이, 연약한 이웃의 의지할 곳 되게 하소서. 겨자씨, 작지만 나의 마음에 사명의 큰 꿈 심으소서. 멍에, 무겁지만 나의 어깨에 순종의 멍에 얹으소서. 그릇, 주가 쓰시겠다 할 때 언제나 깨끗이 준비되게 하소서. 나귀, 주가 쓰시겠다 할 때 언제나 나의 등 내어드리게 하소서. 그물, 나를 사람 낚는 도구로 세상의 바다에 던지소서. 물맷돌, 나를 세상의 악한 문화 파하는 도구로 골리앗에게 던지소서. 나드, 나를 열어 붓는 모든 이의 몸과 마음을 닦는 향유되게 하소서. 문, 나를 열고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꼴과 쉼을 얻게 하소서. 주여, 나를 올해도 이런 복음의 도구로만 써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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