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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영상  Weekly Sermon

담임목사 칼럼  Pastor Column

순종을 어렵다고만 여기는 성도들에게
목회하면서 보니 성도들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는 단연 순종(順從)인 것 같다. 물론가르치는 목회자 입장에서도 이를 쉽다 말하긴 어렵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 아는 것 많고 배운 것 많은 성도들더러 “하나님 말씀이니 순순히 따르라.이에 자기 생각은 무조건 비우라"고 하는 것은 참 가혹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경은 여전히 아랑곳 않고 우리에게 순종하기만을 요구하니, 말씀 전하는 설교자로서는 꽤 난감하다. 그렇다고 성경이 말하는 것을 전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러자니나부터도 어려운 이 순종을 성도들에게만무조건 하라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어떨 땐 이런 찬양 가사 하나도 부담된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다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노래야 부를 수 있겠지만 마음은 솔직히힘들다. 이렇게 고민이 깊어갈 즈음, 그 답을 전혀 엉뚱한 곳에서 좀 찾은 것 같아 감사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난 주간있었던교역자수련회에서였는데, 이번 수련회는 모처럼 해외로 가는 일정이라 항공권 구입부터 숙소와 상세일정 모두를 다 여행사에게 맡겨진행하였다. 그랬더니 세상에어찌나 편하던지. 사실 난 적지 않은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늘 선택에 대한 부담을 안고 산다. 내가 뭘 어떻게 선택하고 결정하느냐에 따라 교회의 방향이 결정되기에 그에 대한 책임감은 실로 무겁다. 교회의 부흥과 쇠퇴, 성도의 행복과 불행이 어찌 보면 나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비록 잠깐이긴 했지만그 무엇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만끽하니 너무나 좋더라. 오로지 가이드가 하라는 대로만 하니 너무 편하더라. 모이라면 모이고, 타라면 타고, 보라면 보고, 설명해주면 듣고,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고, 일어나라면 일어나고... 그랬는데도좋은 것 먹고, 좋은 데 자고, 좋은 것 구경하고, 좋은 것 배우며, 안전하게 잘 다녀왔으니 말이다. 특히 초행길 객지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은 그곳에서, 경험 많고, 그곳 사정 잘 알고, 이미 수천 명 여행객을 안내해 본 경험을 가진 가이드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은 안전과 행복을 담보하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내가 뭘 고민하거나 머리 싸맬 이유가 전혀 없었다. 가이드 말만 따르면 다 되었다. 오히려 가이드가 하라는 대로 안하고, 하지 말라는 것 하는 게 더 위험했다. 그리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순종이 어려웠던 이유도 가이드보다 내가 더 잘 안다는 교만을 떨었기때문은 아니었나 싶다. 가이드를 믿지 못한 불신 때문은 아니었나 싶다. 물론 해외여행 가이드야 그럴 수 있다. 어떤 가이드는 여행객을 이용해 자기 주머니만 채우려할 수도 있으니. 하지만 우리 인생 여행의 가이드이신 하나님은 결코 그럴 분이 아니시잖는가?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보라.그들 또한한 번도 가보지 않은 광야 길을 그래서 안전하게 걸었다.탁월한 가이드이신 하나님만 믿고 따라가니 추위엔 불기둥, 더위엔 구름기둥으로 그분이 인도하셨고, 배고플 땐 만나 내려 먹이셨고, 목마를 땐 반석이라도 쳐서 물을 내셨다. 그렇게 전쟁의 위험도 이기게 하셨고, 강과 바다의 장애도 제거해주셨다. 오히려 그 가이드를 믿지 못하고 자기들 맘대로 하려다가 더 위험에 빠졌었다. 그러니우리도 순종을 너무 어렵다고만 여기지 말자.여행이나 인생이나 비슷한 원리라면, 하나님이훨씬 더 믿을만한 가이드 같다면, 그 분 따르는 일을힘들어하지 말자.내가 염려하지 않아도, 머리 싸매지 않아도 “그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의지하면 그가 친히 이루시리라”(시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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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에 새겨보는 최재형(崔在亨) 선생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뉴스를 검색하다반가운 소식 하나를 만났다. 그것은 바로 오랜 세월 해외에 흩어져 살아온 독립유공자 후손 39명에 대해마침내 우리 법무부가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하는 행사를 가졌다는 소식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최재형(1858.1.20.~1920.4.7.) 선생의 손자 최발렌틴 씨도 포함되었음에는 정말반가운 마음 금할 길없다. 지금이야 이 최재형 선생에 대한 보도가 많아졌다만, 사실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그의 존재감은 참으로 미미했다.나 역시도 최근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해 보기 전까진몰랐다.막말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사실은알아도, 그것이 가능하도록 막후에서 지원하고, 그 손에 그 총을 직접 쥐어준 이가 최재형 선생이었음을 아는 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이에는 안중근 의사를 체포한 일본이 집요하게 그 배후를 물었을 때 “모든 것은 나 혼자서 기획했다”며 끝까지 최재형 선생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 그렇다면 왜 안중근은 그랬을까? 그에게도 최재형 선생은 우리 독립운동사에 없어서는 안될 대부(代父)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아시는 대로 최재형은 원래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노비 아버지와 기생 어머니에게서 출생한 천민의 자식이다. 그래서 너무나 살기 힘들어 11살 때 가출을 결심하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근처 포시에트 항구까지 와서 어느 바닥에 쓰러진다. 그러자 마침 지나던 러시아 상선의 선장 부부가 그를 발견하고는 양아들로 입적한다. 정말 큰 은혜다. 이에 최재형은 그 아버지를 따라 세계 일주도 하며 세상 문물을 익히게 되고, 돌아와서는 러시아어도 완벽히 배워, 당시 돈을 벌려 블라디보스톡으로 몰려 온 한인노동자들의 통역관으로서의 입지도 굳혀나간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으로서도 출세하여 군수에까지 올라 러시아 정부의 두터운 신임도 받는다. 게다가 러시아의 극동진출 정책으로 대규모 군대가 블라디보스톡에 주둔하게 되자 그 군납업까지도 최재형이 맡는다. 그래서 그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그러니 이제야말로 그는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평생 먹고도 남을 재산가로서 남부럽지 않은 편안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그는 거기에 안주하지 않는다. 이제 본격적으로그가 하고 싶었던 일, 해야만 했던 일을 시작한다. 그리하여한인노동자들에게 일감을 주어 잘 살게 하는 것을 넘어,그 자녀들을 위한 학교도 30개나 지어 교육에 힘쓴다. 배워야만 우리 민족이 가난과압제를 벗을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니한인들은 최재형의 그 노블레스오블리쥬를 진심으로 존경할 수밖에.급기야 집집마다 그의 초상화까지도 걸어둘 정도였고,그의 별명 또한'최페치카'('러시아 난로'처럼 따뜻한 사람)로 부를정도였다. 그뿐 아니다.그가 러일전쟁에 통역장교로 참가하면서 본일본의 만행이 우리나라에까지 미쳐 고종을 폐위시키고 군대까지 해산한 것을 알게 되면서는, 급기야남은 인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도 바치리라 결심한다. 그래서연해주로 몰려 온 독립투사들을 만나 '동의회'를 조직해 본격적인 항일투쟁에 나서고, '대동공보'를 발행해 일본의 만행을 만방에 알린다. 이에 최재형은 그 모든 자금을 아낌없이 지원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출세하고 돈 번 목적이 모두 이를 위함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이를 안 일본은 러시아를 압박해 최재형에게 제재를 가하기 시작하고, 결국 자금줄까지 끊게 하면서, 1920년 4월에는 직접 최재형을 찾아와 체포해 처형시키고, 그 가족과 자녀들마저도 거의 다 죽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 이 때문에더 우리가 최재형 선생을모르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면 최재형 선생은 현대판 모세 같은 분이다.독립에 위대한 공을 세우고서도 그 독립을 보진못하신 분.얼마든지 혼자 나 몰라라 하고 잘 살 수 있었지만,그모든 것을 다 바쳐 민족 구하는 일에 앞장서신 분.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무덤조차 모르고 있었으니,이 역시모세를 닮았다.게다가 그는 신실한기독교인이었다지 않은가? 그래서 더욱'최재형'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새겨야 할 소중한 이름이다.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잘 살고 높아질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함을 똑똑히 가르쳐준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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