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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영상  Weekly Sermon

담임목사 칼럼  Pastor Column

‘소확행’(少確幸)
이는 말 그대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small but sure happiness)을 뜻하는 말이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수필 『랑겔한스 섬의 오후』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등을 언급하며 ‘소확행’이라 이름 붙이면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하여 이는 크고 대단하고 무지개나 뜬 구름 잡으려는 허황된 꿈에 묶여 사느라, 일상에서 스치는 수많은 소소하고 작은 행복을 놓치며 사는 삶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일깨우는 참 소중한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이에 정신이 번뜩 차려진다. 보름간 미국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지, 또 정확히 보름이 지난 오늘까지 내게도 그런 일은 참 많았기 때문이다. 한 권사님이 점심을 대접하시겠단다. 그래서 나갔더니 기쁜 소식 하나를 전하신다. “지난 번 임파선이 너무 부어 병원도 못가고 고생할 때, 목사님이 미국 가기 전 안수기도 해 주셔서 깨끗이 나았다”는 말씀. 그러니 이보다 더 확실한 행복이 목회자에게 또 있으랴. 또 한 집사님을 주차장에서 만났다. “근래 아들 장가가고 잘 지내시냐” 그랬더니, 대뜸 “저는 오산침례교회를 만나 너무 행복하다”시며, “2008년에 먼저 하늘나라 간 남편 위해 온 교회가 기도해주신 일, 자녀들 잘 자라서 출가하도록 기도해주신 일 등이 너무 감사하다”신다. 또 “1년 전 왼쪽 눈 위에 알 수 없는 통증에 너무나 괴로워 병원을 다녀도 치료될 기미를 보이지 않던 중에 문득 주일예배 때 ‘라파’ 설교하시며 치유기도 해주셨을 때 그 때 싹 나았다”시며 “너무 감사했다”는 말씀에 얼마나 힘이 나던지. 또 한 권사님은 수요예배 때 개떡 몇 개를 봉지에 담아오셨다. “목사님들 드리려 만들었다”시며 내게도 몇 개 주시기에 사택에 들고 가 간식으로 먹었더니 어찌나 그 개떡이 맛있던지. 또 한 집사님은 최근 어쩔 수 없는 합병증으로 왼쪽 다리 일부를 절단하셨는데, 마침내 의족을 새로 마련하셨다며 전화를 주셨다. “목사님, 제 의족이 만들어졌으니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1층에 내려갔더니 너무나 편안하게 그것을 자랑인 듯 설명해주신다. 심지어 나랑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러고 나서 목양실로 올라와 핸드폰에 저장된 그 집사님과 찍은 수술 전 사진과 수술 후 의족 한 사진을 비교해서 보는데, 사진 속 그 집사님의 표정 속에 신앙이 아니면 결코 가질 수 없는 그 놀라운 평강을 발견하니, 목회자로서 또 어찌나 감사하던지. 월요일 오전, 일이 있어 출근을 했더니 한 장로님이 정원을 돌보고 계신다. 장로님 아니면 그냥 버려졌을 그 자투리땅에 언젠가 장미를 사다 심으시더니 이렇게 매일 같이 나오셔서 돌보신다. 고마운 일이다. 옆에 권사님도 계셨는데, 4시쯤 전화가 왔다. “목사님 아직도 목양실에 계시면 저녁 도시락이라도 시켜드릴 테니 드세요” 그러시는데, 저녁 생각도 못하고 공부가 길어지던 차에 먹으니 어찌나 맛있던지. 그 덕에 밤 12시가 되도록 거뜬히 목양실을 지킬 수 있었다. 지난주일, 궐동2부를 마치고 세교성전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일학교에 다니는 주혁이가 날 보자마자 너무나 반가워하며 “목사님~”하면서 뛰어온다. “예배드리러 오는 거야?” 물으며, 그 아이를 품에 안아주는데 어찌나 그 촉감이 좋던지. 세교3부를 마치고 6교구연합예배에도 참석했는데, ‘그래도 웃어요’ 영상에 나오는 예린이가 어찌나 깜찍하게 연기를 잘하던지, 그리고 3교구연합예배에도 참석했는데 민영, 성범, 성현 3남매가 보여준 연극이 어찌나 재밌던지... 오랜만에 미세먼지도 걷힌 파란 하늘 흰 구름과 함께 그렇게 지난주일도 내겐 ‘소확행의 주일’이었다. 물론 이외에도 소개할 소확행은 너무 많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주보의 ‘목양칼럼’란마저도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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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거리 20만
지난 월요일 아침, 서울 극동방송 직원 채플 설교를 하고돌아오는 중, 문득 운전대 뒤 자동차 주행거리 계기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숫자도 정확히 199,999km. 그래서 기념이다 싶어 얼른 휴대폰을 꺼내 찍었는데, 곧 계기판은 200,000km로 넘어갔다. 신기한 그 숫자를 확인하고 오산으로 내려오는데, 새삼 지난 10년이 스쳤다. 이 차를 몰고 東으로, 西로, 南으로, 北으로 다녔던 수많은 도시와 마을들이 떠올랐고, 더불어 10년간 20만km에 이르도록 아무런 사고 없이 안전할 수 있었음이 너무 감사했다. 심지어 내 차와 부딪히지 않고 잘 피해 다녀 준 전국의 모든 차량들에게까지도 감사했다. 그렇게 오산에 돌아와서 보니 벌써 계기판은 20만하고도 50km를 더 넘고 있었다. 하나님과 교회에 또 한 번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도 스쳤다. 지금까지 지키신은혜는 말할 것도 없이감사한데,그 차로 다닌 거리만큼 난 얼마나 가치 있는 일도 하며 다녔는가? 어느 기록에 보니 예수님이 공생애 3년 동안 다니신 거리를 누가 계산해두었더라. 그 거리는 어림잡아 5,029km. 만약 그 계산이 신빙성 있다면, 1년에는 1,676km를 다니신 셈이고, 매주는 32km, 매일은 4.6km를 다니신 셈이다. 성인의 보폭을 80cm정도로 잡는다면 매일 6,625보를 걸으신 셈이다. 그러니 나는 10년 동안 200,000km, 예수님은 3년 동안 5,000km. 내가 예수님보다 10배도 넘게 쏘다닌 셈이다. 하지만 나와 예수님의 영향력은 너무도 다르다. 예수님은 그 3년의 5,000km로 인류를 구원하셨는데, 난 대체 뭔가?갑자기 주행거리 20만 앞에서 부끄러워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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