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공동체를 위하여 | 조회수 : 1055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18-12-01 |
누가 이런 글들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하여간 떠도는 말 중에는 이런 유머들도 있음을 최근에 알았다. 한의사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밥이 보약’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란다. 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겨야 한약 한 첩이라도 지어먹을 마음이 생길 텐데, 모두가 밥이 보약이라고만 믿어버리면 한의원들은 문 닫으라는 소리냐는 농담이다. 그런가하면 학원 원장이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단다. 그것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학생이란다. 열을 가르쳐도 하나만 아는 학생들이 많아야 학원도 잘 될 텐데 학생들이 너무 똑똑해도 어렵다는 말이다.
또 변호사가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란다. 누군가는 법도 어겨줘야 그들도 할 일이 생긴다는 말이다. 또 치과의사가 싫어하는 사람도 있단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라 여기며 치과 치료는 아예 받지 않으려는 사람이란다. 또 성형외과 의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그냥 생긴 대로 살지’라 여기고 조금의 돈도 얼굴 고치는 데는 쓰지 않으려는 사람이란다. 그러면 성형외과 의사는 뭘 먹고 사느냐는 얘기다.
듣고 보니 이런 농담들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라고 동의해야 할지, ‘아니라’고 부인해야 할지도 헷갈린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 시대에 유행하는 노래나 농담은 그 시대의 흐름이나 현상과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다는 것에는 솔직히 신경이 쓰인다. 그러므로 이를 두고 너무 심각하게 여길 필요까지야 없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냥 웃어넘길 일만은 아님도 알아야 할 것 같다.
모름지기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공동체’(共同體)이기 때문이다. 자연계의 먹이사슬처럼 모두 다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사회란 뜻이다. 나의 선택 하나가 엉뚱한 사람에게까지 영향도 줄 수 있는 구조이다. 지구 반대편의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지금 이곳에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는 그래서 과장된 말이 아니다. 나에게는 좋은 것이 남에게는 나쁜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의 굳은 결심이 다른 이에게는 큰 걱정이 될 수도 있다. 나의 기쁨이 남의 아픔이 될 수도 있고, 내가 피 흘려 관철시킨 정의(正義) 또한 상대에겐 불의(不義)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고민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함부로 쉽게 뭘 하지도 말아야 한다. 나의 원함을 모두를 위한 필요라며 우기지도 말아야 하고, 지금의 선택이 미래에도 유효하리란 고집도 말아야 한다. 인간의 선택은 언제나 차선(次善)일 뿐이었지 최선(最善)은 없었지 않았던가. 그러니 국가도 무슨 정책을 내놓을 때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개인인 나 또한 내 기준에 의하여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할 때 공동체를 염두에 두는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말할 것도 없다. 교회는 유기체이자, 생명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디자인되었다. 따라서 교회는 구조상 나 하나의 작은 행동이나 말이 큰 영향을 미친다. 좋은 일도 그러하지만 좋지 않은 말이나 행동은 더욱 그리하다. 발가락 하나 물집 잡히고 아파도 온 몸이 뒤뚱거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지도자의 말과 행동은 얼마나 중요하랴. 목회자는 말할 것도 없고, 평신도 지도자의 말과 행동 또한 교회의 건강성과 공동체성을 지켜가는데 너무 중요하다. 무심코 내뱉는 상스럽고, 근거 없고, 섣부른 말 한마디가 주는 폐해는 의외로 크다. 특히 돈을 차용하거나 거래하는 일은 더욱 치명적이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했다 해도 결과는 반드시 상처로 남는다.
그러니 조심하자. 나만 생각하지 말고 남도 생각하자. 남이 아프면 나도 힘들어짐을 기억하자. 교회는 누굴 상처 주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치료해야 할 야전병원이다. 교회는 한 몸이다. 그리스도는 그 몸의 머리이시다. 누구든 예외없이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영향아래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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