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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말'에는 교통법규가 없나? 조회수 : 113
  작성자 : 김종훈 작성일 : 2019-04-09



신호위반범칙금 고지서가 날아왔다. 강원도를 다녀오다 어느 초행길 국도에서 찍힌 것 같다. 잠시 딴 생각을 하던 터라 정지신호임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어버렸다. 혹시 했는데 역시 날아왔다. 받고 보니 씁쓸하고 생돈 내니 아깝다. 물론 신호위반한 사실이야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사고 낸 것도 아니고, 다른 차량 통행에 피해 준 것도 없는데, 신호위반 그 자체만으로도 벌금을 내야 한다니 억울도 하다. 하지만 어쩌랴. 별 수는 없다.

그러고 보니 이 나라 교통법규란 게 좀 과하단 생각도 든다. 솔직히 신호위반은 했어도 남에게 피해만 안주면 되는 것 아닌가? 과속하고, 중앙선을 넘었어도 사고만 안나면 괜찮은 것 아닌가? 음주운전도 마찬가지. 자기 돈으로 술 마시고 자기 차로 운전하는데 왜 면허증을 뺐나? 사고만 안내면 되지? 그런데도 이 나라 법규는 그것만으로도 범죄로 간주해버린다.

왜? 도대체 왜? 아마도 그것은 그렇게라도 해야만 질서가 유지되고, 사고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아무리 내 돈 주고 산 차를 내가 운전해도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되며, 또 그 차가 달리는 도로는 모두의 것이기에 그런 법규도 만든 것 같다. 그러니 억울해도 어쩌랴.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니 따를 수밖에. 

자,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바로 우리의 . 에는 교통법규가 없나? “내 입 갖고 내 말하는데 누가 뭐라 그래?”라는 사람들의 말, 거긴 왜 단속이 없나? 근거 없는 모함, 무심코 옮기는 헛소문, 욕설과 윽박지름, 반말과 거짓말, 경멸과 면박의 말... 정말 괴롭다. 목소리 크면 이기는 문화는 여전히 팽배하다.

특히 우리 말에는 '과속'이 많다. 너무 앞선다. 너무 빨리 판단한다. 들어보기도 전에 알아. 됐어.” 그래버린다. '중앙선 침범'도 많다. 상대방이 말을 하고 있는 중에도 선을 넘어 중간에 치고 들어간다. 허락도 없이 말문을 막는다. '신호위반'도 많다. 갈 때와 멈출 때를 모른다. 말할 때와 들어야 할 때를 모른다. 또 '음주운전'도 많다. 말이 이랬다저랬다 한다. 앞말 뒷말이 다르고, 어제 한 말과 오늘 하는 말이 다르다. 그러니 말에도 단속은 필요해 보인다.

왜? 왜일까? 말로 입은 상처 또한 생각보다 깊고 오래가기 때문이다. 말은 내 입의 말이지만,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의 귀와 인격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함부로 남의 인격에 허락 없이 침범하여 상처 낼 자유는 누구도 허락받지 않았다.

그러니 상대가 거칠게 운전해도 방어운전만 잘하면 되지”, “내가 상처 안 받으면 되지제발 그렇게 말하지 말자. 방어운전으로도 막을 수 없는 불가항력적 사고도 분명히 있다. “정히 그러면 무고죄나 명예훼손죄로 고발하면 되지"라고도 말하지 말자. 과연 어느 서민이 용기 내어 그 복잡한 재판 과정에 뛰어들 수 있겠나?

고난주간이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도 어지간히 말로 상처 입으셨을 것 같다. 십자가 고통에 말 고통까지 당하셨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는 가룟유다의 가증한 말, “나는 예수를 모른다한 베드로의 배신의 말,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는 지도자들의 희롱의 말, 뒤에서 머리 때려놓고 네가 선지자면 누가 때렸는지 맞춰봐라는 군병들의 모욕의 말... 이렇게 예수님은 말로도 상처 입으셨다.

그러니 제발 말조심하자. 말도 죄가 될 수 있다. 나는 좋은 말 듣기 원하면서 왜 당신은 타인에게 비수를 꽂는가? 당신이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위로 되는 말, 힘 되는 말을 하라. 우리는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당연하나 당신은 옳지 않은 것이 없나이다.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며 십자가에서조차 구원받았던 그 강도의 말. 함께 고통 받는 예수님께도 큰 위로가 되었을 그 말 한마디가 이 시대에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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