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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아~ 장모님 조회수 : 1114
  작성자 : 담임목사 작성일 : 2015-07-02



  오늘은 우리 성도님들이 양해만 해주신다면 꼭 한 번 싣고 싶었던 글을 실을까 한다. 바로 얼마 전 하나님의 영원한 품에 안기신 나의 장모, 고(故) 김혜숙 권사님 얘기다. 사실 내 어머니도 아닌 장모의 장례를 두고 이렇게까지 연이어 설교도 하고 글도 쓴다는 게 이상할 법도 하다. 돌아가신지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극렬한 아쉬움과 밀물 같은 감동이 멈출 줄 모른다는 게 너무 유별난 듯도 하다. 하지만 처가의 슬픔을 옆에서 지켜보는 나 역시도 매한가지니 이 글 몇 줄로라도 그 마음 좀 달래보려 하니 넓은 이해를 바란다.
  사실 사랑하는 아내의 어머니의 소천이니 세상 어느 남편의 마음이 편하랴. 옆에서 하루 종일 통곡하며 눈물을 쏟아내는 아내를 바라보는 내 마음 역시 요 며칠, 절대로 편치 못했다. 아마 이 세상의 어느 자식도 어머니를 황망히 떠나 보낸 허탈함과 슬픔은 다르지 않으리라. 게다가 내 장모님 같은 경우는 너무나 일찍 장인어른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무려 8남매를 거의 홀로 키우셨으니, 자식 입장에선 더욱 고마워 그랬을 것이고, 더욱 죄송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요 며칠 내가 지켜본 처가네 분위기는 꼭 그런 극도의 슬픔과 고마움에서만 비롯된 건 아닌 듯 보인다. 그 아쉬움의 깊이가 너무 깊다. 그 자리가 너무 크다. 그 떠남의 모습이 너무 신기하다. 그 남긴 유산 또한 너무 귀하다.
  장례식장에 오셨던 성도님들에겐 다 말씀 드렸다만, 장모님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신 건 이번 설 연휴가 시작되던 2월18일 수요일 아침이었다. 밤새 뇌경색이 급성으로 진행되어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되신 상태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는 5일간, 정확히 연휴가 끝나는 주일까지만 의식을 잃은 상태로 병원에 계셨다.
  그러니 모든 손주들까지 명절에 어머니 할머니 뵈려 집을 나서던 차에 소식을 들은지라 8남매에 사위 며느리, 손주들까지 무려 30명이 넘는 가족들이 5일 동안 내내 모두 그 곁을 지켰다. 정말 일부러 맞춘 듯한 일 같다. 게다가 운명하신 날은 2월 23일 새벽, 46년 전 장인어른이 주일아침 새벽기도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천국가신 바로 그 날 그 즈음의 시간. 이 역시 소름 돋을 정도의 맞춤이다. 게다가 지난 5월, 홀로 있던 장인어른의 묘를 이장하여 이북5도민 묘에 자리를 마련하고 곁에 장모님 자리까지 마련한지 정확히 7개월 만이다. 평양에서 월남하신 이들과 함께 하는 자리, 당신 남편의 유골까지 그 곁에 둔 자리에 결국 장모님도 누우신 것이다. 마치 다 알고 미리 예비해 오신 것만 같다.
  게다가 이번 장례는 아들 딸 뿐 아니라 사위 며느리 손주들까지 모두가 다 자기 어머니 돌아가신 양 애통해 한다는 점이다. 나를 비롯한 사위들 모두가 장모님 장례가 아닌 내 어머니 장례처럼 여기고 있다. 손주들 역시 할머니 장례가 아닌 제 어머니 장례를 치른 분위기다.
  어쩌면 그러냐고? 충분히 그럴 만하다. 워낙 우리 장모님은 사랑이 많으셨고, 늘 퍼 주는 분이셨다. 아들딸 뿐 아니라 사위, 며느리, 손주들을 똑같이 사랑하셨고,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부드럽게 대하셨다. 단 한 번도 화내시는 걸 못 봤다. 그 손길 안 간 이가 없고, 그 마음들을 고루 다 만져 놓으셨다.
  그래서인지 장모님 사후처리문제도 갈등이 없다. 모든 부의금까지도 하나님께 드리자고 다 결정했다. 또 장모님 돌아가시면 이제 명절 때마저도 잘 모이지 않으리라는 걱정은 저리가고, 생전 때보다 더 잘 모일 것 같은 분위기다. 요 며칠 장성한 손주들이 고모 이모들을 불러 밥까지 사는 걸 보면, 자식도 자식이지만 손주들이 이 가족모임에 더 간절한 바램을 갖고 있다.
  그래서 깨달은 것 몇 가지. 사람은 어쨌거나 사랑하며 베풀며 살아야 하고 친절해야 한다는 것. 사람은 머문 자리가 더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 부모는 생산성의 가치보다 존재로서의 가치가 훨씬 더 크다는 것,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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