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역량’을 키운다는 것, ‘신앙생활’ 한다는 것 | 조회수 : 1137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16-05-27 |
1. 역량(力量)을 키운다는 의미는 뭘까? 가진 것을 늘이는 것일까? 영향력을 키우는 것일까? 당연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다. 심지어 나와 별 상관 없는 대상을 향해서라도, 내게 직접 도움 되지 않는 곳을 위해서라도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감이 역량을 키워가는 것이다.
왜 우리 교회는 십수년째 무료급식과, 사랑의 도시락봉사를 죽어라고 해올까? 그렇게 해서 우리 교회 성도된 숫자가 얼마나 된다고? 왜 굳이 예꼬선교원에, 로뎀실버텔에, 영락어린이집에, 로뎀장애아어린이집까지도 운영할까? 왜 우리는 적어도 1년에 한번 씩 해외 단기선교를 나가고, 몇 차례 국내 미자립교회도 도우며, 1년에 수천만원의 예산을 선교사님들 돕는 일에도 쓸까? 심지어 오산농아인교회까지도 우리 교회를 빌려 개척하도록 했을까? 다 영향력이다.
마침내 교회는 복지관도 수탁했다. 물론 바램이야 복지관의 직원이나 고객들 모두가 우리 교회 교인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그 역시 복지관 운영의 목적은 아니다. 그것도 영향력이다. 왜 담임목사는 브라질까지 가서 빈민선교를 해야 할까? 우리 주변엔 빈민이 없어서? 물론 아니다. 그것도 영향력이다. 왜 그 옛날 영국 신사 토머스는 런던대학을 졸업한 수재이면서도, 1866년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이 조선 땅에 들어오려 했을까? 영국엔 전도할 데가 없어서? 아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조선 땅에도 복음을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순교의 피로 대한민국은 기독교부흥을 이루었다.
그러니 할 수 있다면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영향력을 키워 나가자. 내가 아는 사람, 내게 도움 되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감당할 몫을 더 늘여나가자.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역량에 맞는 필요한 것들도 채워주시리라.
2. ‘신앙생활’한다는 건 뭘까? 쉬운 걸까? 어려운 걸까? 사소한 걸까? 위대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앙생활은 어렵지만 위대하다. 지난 주 설교시간에 들었던 결혼과 부부에 대한 비유가 그래서 이에도 꼭 맞다.
신앙은 첫째,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것과 같다.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는 비가 오면 질퍽거리는 길을 다녀야 하고, 신발을 버려야 하며, 돋아나는 마당의 잡초를 수시로 뽑아야 하고, 온갖 벌레와의 전쟁을 치러야 하며, 소똥 냄새에도 적응해야 하고, 외로움도 달래는 수고가 동반된다. 그것을 해낼 각오가 있어야 한다. 저절로 되는 일이란 아무데도 없다. 그래서 모든 신앙인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야 한다고 예수님도 가르치셨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은 멋쟁이 높은 빌딩도 부럽지 않은 행복 공간이 될 수 있다.
반면 신앙은 ‘사진 한 장으로 그랜드캐년 담기'와 같다. 그러니 어찌 그 일이 가능하랴! 깊이 파인 1,5km 계곡과 420km 길이의 그 장엄한 장관은 절대로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없고, 찍은 사진 한 장만으로 다 설명할 수도 없다. 게다가 그 찬란한 석양이 만드는 초절정의 경이로움과 벼랑 끝 소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깊은 계곡을 내려 보는 아찔함과 경비행기를 타고 계곡 사이를 누비는 아슬아슬함과 콜로라도 강바람이 주는 상쾌함은 절대로 사진에 다 못 담는다.
그런 점에서 신앙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내가 경험한 신앙생활은 신앙이 원래 가진 가치의 전부가 결코 아니다. 그 행복과 가치는 아직 다 맛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내 경험으로 그 가치를 판단하는 건 매우 어리석다. 그러니 차라리 그 모든 가치와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믿음을 탓하자. 신앙에는 우리의 상상을 넘는 위대함이 분명코 있으니 더 겸손하고 더 기도하고 더 사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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