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고난주간 특새 말씀 요약" | 조회수 : 895 |
작성자 : 담임목사 | 작성일 : 2015-07-02 |
첫째날 새벽(눅 23:23-25)
왜 사람은 늘 ‘후회’할까? 왜 그럴까? 알고 보면 그것은 양심을 따라 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빌라도가 그랬다. 그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예수님을 죽일만한 죄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을 놓아주려고도 했다. 하지만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놓아준 장본인이 된다.
왜 그랬을까? 알고 보니 군중들이 두려워서였다. 자신의 관할 지역에 민란이 일어날까봐 두려워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바로 그 일로 그는 지금도 ‘사도신경’에서 욕을 먹고 있다.
백성들 역시도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괜한 의인을 우리가 죽였다고 후회했다. 왜일까? 그들의 소리가 예수님의 소리를 이겨먹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원만을 관철시키려 했고, 그들의 뜻대로만 세상이 돌아가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후회했다.
따라서 후회를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떤 상황에도 양심을 따라 행하는 것. 자기 뜻, 자기 생각, 자기 목소리를 줄이고 하나님의 뜻과 기대와 생각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둘째날 새벽(마 26:20-25)
예수님의 제자 가룟유다는 왜 스승을 팔았을까? 신앙을 떠나 제자로서의 도리마저 왜 포기했을까? 게다가 자살로까지 생을 마감했을까? 알고 보니 그는 예수님을 단 한 번도 “주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았다. 그저 “랍비”(선생)일뿐이었다. 이게 왜 중요한 문제일까?
주님은 한분뿐이나 선생은 여럿이다. 주인은 바꿀 수 없으나 선생은 바꿀 수 있다. 선생은 학생에 의해 선택되지만, 종은 주인이 선택한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가룟유다의 불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겨야 한다.
셋째날 새벽(마 26:1-75)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지 못하는 일 몇 가지가 있다. 누군가 내 자존심을 건드릴 때, 날 두고 뒤에서 욕하거나 음모를 꾸밀 때, 무시당하고 대접 못 받을 때, 뻔한 거짓말을 내 앞에서 할 때, 애쓴 보람이 없을 때, 마음에도 없는 호의를 억지로 받아야 할 때, 배신당했을 때, 내가 힘이 있는데도 그 힘을 쓰지 못할 때이다. 이런 것 중에 한 두가지만 당해도 참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이 꼭 그런 일을 당하셨다. 한두 가지가 아니라 그 모든 경우를 다 당하셨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다 참으셨음이 놀랍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존감. 어떻게 자기를 다루어도 내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자존감이 예수님 마음을 지켰다. 또 하나는 사명감. 반드시 십자가를 지고 구원을 완성하셔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 모든 걸 참으시게 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이런 자존감과 사명감이 필요하다.
넷째날 새벽(마 26:75)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서도 가룟유다처럼 되지 않은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심히 통곡한 덕분이었다. 그것이 그를 회복시켰다. 온전한 믿음과 순종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생각하는데 있다. 사랑은 자꾸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이다. 믿음도 자꾸 예수님이 생각나는 것이다.
다섯째날 새벽(고전 1:18)
누구에게든지 보물처럼 여기는 소중한 물건이 있다. 가격이 비싸서가 아니라 의미가 깊어서이다. 십자가가 모든 성도의 보물인 이유도 그렇다. 거기에서 나의 죄가 도말되었고, 나의 실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죄는 죽이되 사람은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지혜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죽으실 만큼 나는 큰 죄인이며, 예수님을 죽여서라도 나를 구원하실만큼 내가 소중한 존재임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전글 : 아~ 십자가(十字架) | |
다음글 : 2015 단기선교(1)-세계한인침례교선교사대회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