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자신을 살피라 | 조회수 : 1087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17-03-10 |
이런 작금의 국가적 어려움을 두고 이렇게 가벼운 농담으로 글을 시작해도 될는지는 모르겠다만, 너나할 것 없는 이런 무거움을 이렇게라도 추스르고자 하니 널리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요즘 떠도는 유머 중에 이런 게 있단다. 한의사가 싫어하는 사람은 ‘밥이 보약’이라고만 굳게 믿는 사람이란다. ‘밥만으론 부족하다’ 여기고 때론 한약도 좀 지어먹어야 한의원도 살아남을 텐데 모두가 밥이 보약이라고만 믿어버리면 한의원은 문 닫으란 소리냐는 농담이다. 그런가하면 학원 원장이 싫어하는 사람도 있단다. 그것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학생’이란다. 열을 가르쳐도 하나만 아는 학생들이 많아야 학원도 잘 될 텐데 학생들이 너무 똑똑해도 어렵단 말이다. 또 변호사가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란다. 누군가는 법도 어겨줘야 그들도 할 일이 생긴다는 말이다. 또 치과의사가 싫어하는 사람도 있단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라고 여기며, 치과 치료는 아예 받지 않으려는 사람이란다. 또 성형외과 의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생긴 대로 살지’라고 여기고, 그 어떤 돈도 얼굴 고치는 데는 쓰지 않으려는 사람이란다. 그러면 성형외과 의사는 뭘 먹고 사느냐는 얘기다.
참 누가 이런 글들을 만들었는진 모르겠다만 그렇다할 수도, 아니랄 수도 없는 농담들이다. 웃자고 한 얘기로만 보기엔 뒷맛 씁쓸한 교훈도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어떤 한 사람의 굳은 결심이 다른 이에게는 큰 걱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는 충분히 동의된다.
나아가 이는 ‘내게 좋은 것이 남에겐 아닐 수도 있다’는 점도 가르친다. 내가 피 흘려 관철시킨 정의(正義)일지라도 영원한 정의가 아닐 수 있고, 나 또한 그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단 얘기다.
물론 이는 ‘내게는 나쁜 결과여도 모두에게도 다 나쁜 건 아니다’는 것도 있다. 미래를 위해선 오히려 더 잘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의 판단만으로 최종 결론은 절대로 내리지 말라. 나의 원함을 근거로 모두를 위한 필요라고도 우기지 말라. 인간의 선택은 언제나 차선(次善)일 뿐이었지 최선(最善)은 없었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모두 이해관계로 얽히고설켜 있고,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도 다 다르다. 나의 기쁨이 남의 슬픔이 될 수 있고, 나의 슬픔이 남의 기쁨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이겼다고 좋아라하지만, 패배를 당한 그들은 그때부터 복수의 칼을 갈 수도 있다. 반대로 지금은 졌지만, 앞으로를 위한 역전의 발판도 될 수 있다. 그러니 이긴 자의 교만도, 진 자의 분노도 다 부질없다.
그래서 부탁 하나 드린다. 나 또한 한 공동체의 지도자이자,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마디 붙인다. 첫째, 승자가 패자를 품자. 패자에게 오히려 미안해하자. 본의 아니게 상처 준 것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자. 그렇게 되어야 패자의 마음도 달래지고, 패자 역시 그랬던 것들에 대해 서로 미안해할 것이다.
물론 이 일에는 지도자 된 이들부터 나서야 한다. 어찌 보면 이 작금의 갈등 또한 지도자들 그들이 먼저 만든 것도 있지 않은가? 모두가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과 표현만 달랐을 뿐임을 서로 알아주어야 한다.
둘째, 패자도 승자를 원망하지 말자. 너무 낙담도 말자. 억울하다고만 여기지 말고, 나를 돌아보는 기회로도 삼자. 아무리 억울하여도 ‘남이 보는 나도 나’라는 생각을 갖자.
셋째, 우리 모두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는 마음을 갖고 그 다음을 보자. 이 세상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다. 이긴 사람에게도 질 수 있는 위기가 오고, 진 사람에게도 이길 수 있는 기회는 온다. 그게 세상이다. 그러니 좋아도 마냥 좋아하지만 말고 자신을 살피자. 슬퍼도 마냥 억울해하지만 말고 자신을 살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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