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의 주일예배를 포함하여 지난 한주간의 특별새벽기도회까지 영적전쟁에 관하여 나누었던 말씀의 요약입니다. ‘영적전쟁’이란, “우리가 표면적으로 보고 듣는 것들의 저변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악의 세력과의 싸움”으로서 성도가 이 땅에 사는 한 피할 수 없는 전쟁입니다. 특히 우리가 세상 풍조를 따르거나 말씀에 불순종할수록 이런 전쟁에는 더 많이 노출됩니다(엡 2:2). 이 전쟁에 패하면 결국 우리의 믿음은 박살나고 마귀의 종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에는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강해져야 합니다(엡 6:10).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기 정체성을 지켜내는 담대함과 어떤 쓰러짐에도 다시 일어나는 꿋꿋함이 있어야 합니다.
또 대적해야 합니다(엡6:11). 이는 주님 주신 사명이며(요일3:8), 명령입니다(약 4:7). 이미 주께서 이겨놓으신 전쟁이며(골 2:13-15), 적극적으로 대적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 백병전과도 같습니다(엡 6:12). 그러므로 어떻게든 물러서지 말고 대적해야 합니다.
물론 이 싸움의 대상이 사람은 아닙니다. 악한 영들입니다. 통치자들을 움직이는 영과 영향력 큰 조직과 분야, 사상과 제도들 속에 숨어있는 영들입니다. 또한 환경이 내 안에 가져다 준 잘못된 마음들입니다. 이런 싸움들에서 우리는 밀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합니다. 그것이 힘입니다. 이 힘은 마귀의 능력을 제어할 권능으로서(눅 10:19), 마치 사거리에서 차량을 통제하는 경찰관의 권세와도 같습니다. 우리의 힘으론 마귀를 상대할 수 없지만 하나님 부여하신 권세로는 상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사명의 자리에 서있다면 언제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전신갑주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요?(엡 6:14-17) 첫째는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이는 진실만이 힘이라는 뜻입니다. 영적 군사는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 없고, 투명하고, 거리낌 없어야 합니다. 진실하지 못한 성도는 결코 힘을 낼 수 없습니다.
둘째 ‘의의 호심경’입니다. 호심경은 방탄조끼와 같은 것으로서 뚫리면 죽습니다. 그렇다면 ‘의’는 무엇일까? 이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예수의 보혈로 우리를 덮어주심으로 얻는 ‘의’입니다. 그래서 ‘의’(義)라는 한자(漢字)도 어린양(羊)이 나(我)를 덮고 있는 형태입니다. 그 은혜의 보혈로 내 허물과 부족을 덮어주시기에 오늘도 나는 그분의 자녀로 살아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 ‘평안의 신’입니다. 이는 마음에 평안이 없이는 한 발짝도 전쟁터로 내디딜 수 없다는 뜻입니다. 두려움으로는 나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평안은 누가 주실까요? 예수님이십니다(요 14:27). 어떻게 얻을까요? 기도함으로만 얻습니다(빌 4:6-7).
넷째, ‘믿음의 방패’입니다. 마귀의 공격은 쉬지 않고 날아오는 불화살과 같아서 잠시라도 방패를 내려놓아선 안됩니다. 믿음을 내려놓는 일도 그래서 없어야 합니다. 또 불화살을 막으려면 방패 겉가죽에 물도 적셔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화살 끝에 붙은 불을 끌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방패에도 예수의 보혈을 적셔두어야 한단 말입니다. 보혈은 하나님 사랑의 상징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사랑을 의심치 말아야 마귀의 불화살을 막을 수 있단 뜻입니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입니다. 투구는 머리에 쓰는 것으로서 생각과 판단의 장소입니다. 전쟁에서의 판단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판단에 의해 전략도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 전쟁의 전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소망입니다(살전 5:8). 하나님을 향한 소망, 하나님께서 친히 이 전쟁을 주도하실 거라는 소망, 그것이 유일한 전략입니다(사 59:17).
여섯째, ‘성령의 검’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데, 결국 말씀의 능력만이 마귀를 물리칩니다. 그러려면 칼집에 칼이 있어야 하듯 내 마음엔 말씀이 레마(rhema)로 있어야 하고, 말씀의 능력을 확신함으로 그 말씀의 칼을 사용해야 합니다. 입의 선포로, 삶의 순종으로 과감히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어떤 영적 전쟁도 이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