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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성탄의 추억 조회수 : 1145
  작성자 : 김종훈 작성일 : 2016-12-23



또 한 번의 성탄을 맞고 보니, 저의 반백년 인생의 몇 추억들도 떠올라 적어봅니다. 먼저 저의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성탄인데, 몇 번 말씀드린 바이지만 그 때는 제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가족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외가에서 1년반을 지냈습니다. 당시에는 왜 그래야만 했는지도 몰랐으니 참 외롭고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들을 못 본다는 게 그저 슬펐습니다.

그래서인지 외할머니와 외삼촌과 이모들은 저를 외롭지 않게 해주시려 참 많이 애를 쓰셨습니다. 같이 놀러도 많이 다녀주시고, 함께 일(나무하기, 모심기, 쇠죽 끓이기, 맷돌 돌리기, 약 팔기, 누에뽕잎먹이기, 군불 떼기, 닭 모이주기, 똥통 치우기 등등)도 일부러 거들게 함으로써 외로울 겨를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성탄을 맞았는데, 삼촌과 이모들이 이브날 산타 복장을 하고서는 갑자기 나타나, 자고 있는 저를 깨워 놀래켜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작은 선물과 함께, 저를 꼭 껴안아 주시면서 위로해주셨는데, 지금도 생각나는 참 고마운 성탄의 추억입니다.

또 하나는 3때의 성탄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당시 부산의 천성아동재활원이란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종교와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로 계셨는데, 우리 교회 중등부 전체가 선물과 찬양과 극을 준비해서 그 재활원 강당에서 성탄 공연을 해주었던 일입니다. 당시 제가 중등부 총무를 맡았던 덕분에 친구들이 모두 동의해주어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렇게라도 제가 어머니 하시는 일에 힘이 되어드릴 수 있음이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더 좋았던 것은 그 장애 아이들의 공연이었습니다. 우리의 방문에 감사해서 그들도 무용 하나를 보여주었는데, 일명 목발무용’(crutch dance)입니다. 알고 보니 그 무용은 저의 어머니가 개발하신 거였습니다. 장애인의 상징인 목발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놀라운 발상이었습니다. 그 후 그 무용은 더 유명해져서 부산 구덕실내체육관에서도 그 재활원 아이들이 출연하여 선보인 적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 때도 참 뿌듯한 성탄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199912,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Fiji)에서 보낸 성탄입니다. 저는 당시 군목으로서 군함을 타고 해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들과 순항훈련 중이었는데, 때마침 성탄을 즈음하여 피지의 수바(Suva)항에 정박하였습니다. 아시는 대로 거기는 12월이 한여름입니다. 그래서 성탄도 뜨거운 계절 한가운데였습니다.

그런데도 특이했던 것은 거리의 선물 가게들에는 두꺼운 겨울 산타복을 입은 산타클로스와 눈썰매 타는 그림과 카드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수영복 입은 산타클로스는 의외로 안보였습니다. ‘크리스마스하면 왠지 눈 덮인 겨울이어야 제 맛이라고 그들도 생각하나 봅니다.

더욱이 그 때의 성탄이 좋았던 것은 제가 사관생도들을 위해 준비해간 깜짝 선물 때문입니다. 저는 그 때 생도들을 주려고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친구가 교목으로 있는 평택의 한 고등학교의 여학생들 700명으로부터 위문편지를 받아갔는데, 그것을 거기서 푼 것입니다. 거기다가 그 전 기항지였던 뉴질랜드에서 과자들도 사서 일일이 개별 포장을 다 해둔 봉지에 편지도 하나씩 넣고 성탄선물로 증정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때의 그 환호성은 정말 대단하였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제 마음도 그래서 더 뿌듯하고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매해 성탄은 성탄 자체가 주는 축복들도 크지만, 누군가와 작은 사랑을 나눌 때 더욱 풍성하고 기억 남는 성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의 2016년 성탄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성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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