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말라위 선교여행(2) - 밤하늘과 반딧불 | 조회수 : 1175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17-01-26 |
겨우 3주밖에 안되는 아프리카 선교여행이었고, 나와 내 아내에겐 나름 힘든 여정들이기도 했었기에 한국에 돌아오면 그 땅은 금방 잊혀질 줄만 알았다. 두 번은 못갈 거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시간이 갈수록 그 추억들은 하나둘씩 새록새록 다시 마음에 피어나고 있다.
고생으로만 여겼던 기억들은 다시 그리움이 되어가고 있고, 불쌍하다고만 여겼던 그 아이들의 눈망울도 다시 보고 싶고, 아무 것도 갖춰지지 않은 그 국토 역시 오히려 더 아름다웠단 생각들로 바뀌어가고 있다.
특히 잊지 못할 장면 중 하나는 그 땅에서 본 밤하늘이다. 아마 내 생각엔 초승달과 상현달 사이쯤 되었던 것 같은데, 약 1/3정도쯤 차오른 달이었다. 아무튼 그리 크지 않은 달이 뜬 어느 날 밤, 우리는 말라위의 남쪽 국경이 가까운 Shire 마을에서 사역 중이었다.
그런데 도착한 그날 밤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어찌나 그 밤하늘이 찬란하고 밝던지 그것부터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작은 달 하나와 그 조막만한 별들의 수놓음이 대낮의 거대한 태양이 사라진 그 캄캄한 밤하늘을 넓고도 환하게 비추고 있음이 너무나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우리나라 밤하늘은 이렇지 못한데, 어찌 이 나라 밤하늘은 이럴까? 심지어 보름달 뜰 때조차도 이보다는 환하지 못한데... 또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별들 또한 얼마나 찬란하고 예쁘던지... 우리나라의 밤하늘과 금새 비교되는 건 당연했다. 왜 우리나라는 달도 밝지 않고, 별들도 잘 안보이는지... 안타까웠다.
물론 이유는 딱 하나. 그것은 우리 땅이 너무 밝아서이다. 땅이 밝으니 하늘이 어두운 것이다. 땅의 조명이 너무 찬란하니, 하늘의 달빛 별빛이 못이기는 것이다. 굳이 필요로도 하지 않는다. 땅이 어두워야 하늘은 빛나는데 말이다. 그래서 전기도 없는 그 땅의 하늘이 더욱 빛났던 것 같다.
그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시골 마을 Kasinje 마을에서 사역하였다. 거기서는 내 어릴 때나 보았던 반딧불까지도 눈에 넣었다. 여기저기 나풀나풀 날며 얼마나 찬란히 빛나던지, 어쩜 그리 신비롭고 아름답고 투명하던지. 정말 그 옛날에 반딧불을 모아 글 읽었단 말도 전설이 아니었음이 믿어졌다. 얼마나 공기가 좋으면 이토록 반딧불이 찬란할까?
말이 나왔으니 솔직히 고백한다만, 그날 밤 잠을 청하려 모기장 속에 들어갔는데 반딧불 한 마리가 모기장 속으로 따라 날아 들어왔다. 그래서 쫓아내보려고 이리저리 휘젓다가 그만 그 반딧불을 눌러 죽여 버리는 불상사를 초래하였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그 반딧불은 죽어서도 한동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얼마나 신기한 경험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니 그 경험을 통해 무슨 생각이 또 내게 들었겠는가? 당연 다음과 같은 생각이 스칠 수밖에. 첫째, '땅이 어두워야 하늘이 빛난다'는 거다. 내가 너무 찬란하면 하나님이 어두워진다. 내 삶이 너무 부유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부요를 모른다. 내가 능력있고 잘났으니 하늘의 은혜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교만하면 하늘의 은혜가 내리지 못한다. 겸손한 자에게만 은혜를 주신다.
둘째, '공기가 맑아야 생명이 산다'는 거다. 알려진 대로 반디는 오염에 유독 약한 곤충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사라진 반딧불은 다 오염된 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염이 어디 공기뿐이랴! 우리의 마음도 생각도 너무 많이 오염되었잖은가? 그래서 참 생명이 내 안에 못산다. 참 진리가 내 안에 없다. 하나님의 성령조차 내 안에서 힘 못 쓰신다. 거룩하신 성령은 죄와 함께 거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반디는 죽어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는 거다. 끝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우린 너무 쉽게 우리 자신의 빛을 잃는다. 자기 정체를 숨긴다. 손해볼 것 같고 두려워서이다. 그런 비겁한 우리들에게 반디는 도전한다. 어두울수록 너희 빛을 더 비추게 하라. 죽어서도 그 빛을 비추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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