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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주여~ 조회수 : 1189
  작성자 : 김종훈 작성일 : 2017-07-21



지난주도 어김없이 우리 교회의 새벽은 주여를 외치며 시작되었다. 어떨 땐 한 번, 어떨 땐 세 번. 그 부르짖음은 늘 들어도 간절하고, 늘 외쳐도 뿌듯하다.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의 주님 되심이 그만큼 좋다.

물론 혹자는 이를 두고 무슨 기도를 그렇게 시끄럽게 하나? 꼭 그렇게 미신 부르듯 부르짖어야 하나님이 들으시나? 어디 성경에 그러라 했냐며 비난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모르는 소리 말아라. 그 지적이 무슨 뜻인진 알겠다만, 나 또한 그게 성경적이라 우길 근거는 부족하다만, 그렇다 해서 이 주여의 외침을 평가절하(平價切下)할 마음도 없다.

왜냐? 우선 그 고백의 가치 때문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믿음의 고백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라. 하나님을 나의 주(), 예수님을 나의 주(), 성령님을 나의 주()로 기도할 때마다 고백하며, 그분만이 내 모든 문제의 열쇠, 내 모든 상황의 주이심을 인정하겠다는 게 왜 시비거리가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게다가 그 고백은 고백 자체가 가진 힘도 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처럼, 골리앗 앞에서 다윗이 선포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처럼, 성전 미문의 가난한 장애인을 향해 베드로와 요한이 선포했던 예수의 이름처럼 그 이름은 부르는 것만으로도 힘이 있고 권세가 있다.

20여년 전, 군목 임관을 앞두고 군사 훈련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특히 막타워(Mock Tower) 훈련은 11미터 높이의 모형탑에서 줄 하나에 의지하여 뛰어내리는 유격 훈련의 백미인데, 후덜거리는 두 다리를 붙잡고 겨우 계단을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노라니 정말 아찔하고, 심장 떨리고, 오금이 저렸다.

바로 그 때, 두려움 가득 찬 우릴 향해 빨간 모자 깊게 눌러쓴 빨간 명찰의 조교 나으리가 내린 극약 처방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애인 있습니까?”라는 물음이었다. 그래서 있습니다그랬더니, “그 애인 이름 세 번 복창을 바로 주문하더라. 그래서 나도 얼떨결에 내뱉은 순미야 순미야 순미야~.”

그랬더니 정말 놀랍게도 그 외침 세 번에 좀 전의 두려움은 다 사라지고, 그 아찔한 줄 하나만을 믿고 마침내 하강을 시작해버렸다. 다시 생각해봐도 재밌고 신기한 현상이다. 그러니 하물며 주의 이름이랴. 주의 이름은 그 어떤 이름보다 더 크고 힘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난 이 주여를 간절함의 포효로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극도의 절박함과 타는 목마름을 담아낸 것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영국 웨일즈 부흥의 역사에도 성도들이 짐승처럼 부르짖으며 땅에 뒹굴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설혹 그 외침이 내 감정이라도 풀고픈 마음인들 어떠랴. 자식이 부모 앞에서 그렇게 해서라도 스트레스 좀 풀겠다는 게 뭐가 나쁜가?

그러니 고상한 지성인 운운하며 이 부르짖음을, 무식과 미신의 표시로만 치부하는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당신은 살만하니까 그런 소리 하는 것이다. 절박하면 누구라도 그렇게 된다. 그렇게라도 꺼져가는 기도의 불씨를 지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것도 해야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우리한테도 조심할 게 없는 건 아니다. 첫째, 주여가 구호나 말로만 그쳐선 안된다는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는 지적은 늘 겸허히 들어야 한다.

둘째, 내 부르짖는 기도를 내세워 타인의 기도까지 방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간절함을 핑계로 무례함까지 정당화하진 말아라. 우리의 선한 것으로 비방은 받지 말아야 한다(14:16). 그것이 성도의 지혜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러하다. 기도를 조용한 울림으로 하든, 큰 울림으로 하든 기도의 본질만 살아있다면 뭐든 좋으리라.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단 9:;19). 이렇게 다니엘처럼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나의 간절함만 우리의 기도에 살아있다면 다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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