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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까꿍~ 조회수 : 1134
  작성자 : 김종훈 작성일 : 2017-08-19



  ‘까꿍’은 우리나라 엄마들이 품에 안은 갓난아기와 제일 처음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언어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엄마의 사랑담긴 미소와 애교있는 억양으로 “까꿍”하며 아이와 눈을 맞추며 메시지를 전하면, 아이는 그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서 세상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백만불 미소로 화답합니다. 그 점에서 ‘까꿍’은 참 신비로운 언어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까꿍’일까요? 국어사전에 나오는 그 수많은 단어들을 다 제쳐놓고서… 바로 여기에 우리 옛 어른들의 지혜로운 교육철학이 담겨있는데요. 일설에 의하면 ‘까꿍’은 ‘깨달을 각’ ‘다할 궁’, ‘각궁’(覺窮)에서 유래 되었다지 않습니까? 그러니 말하자면 ‘까꿍’은 “너의 생명 다하기까지 깨닫는 삶만을 날마다 살아가거라” 뭐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만약 이 해석이 사실이라면 이는 참으로 놀라운 교육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이이지만, 알아듣지도 못할 부담스런 주문을 너무 일찍부터 시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이는 지구촌 어느 나라 부모들도 생각 못할 최고의 조기교육이 아니겠습니까? 

  생각해보세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 인생에 잘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나요? 못 배우고 돈 없는 인생보다 어리석고 미련하여 깨닫지 못하는 인생이 더 문제 많은 인생 아니던가요?

  오죽하면 성경도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라 했을까요?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시 49:20),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잠 4:19) 했을까요?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도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사 44:18)과,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음”(사 57:1)을 그 무엇보다 안타깝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닫는 자”(잠 28:5)이며, “깨닫는 자가 지혜있는 자”(단 12:10)이고,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백배의 결실도 맺는다”(마 13:23)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오직 나로 깨닫게 해 달라“(시 119:27,34,125,130,144)는 기도를 그 무엇보다도 간절히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교회 영아부 이름도 ‘까꿍부’이군요. 의미를 알고나니 더 마음에 드는 이름입니다. 정말이지 어린 나이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 안에서 많은 것들을 일찍부터 깨달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삶을 향한 첩경일 것입니다. 이제 올해 마지막 남은 여름성경학교의 대미를 그런 점에서 까꿍부가 잘 장식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부터 한주간은 ‘다니엘 특별 새벽기도회’이군요. 의미를 알고나니 더 간절한 기도가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눈 비비고 참여하는 그 열심 못지않게, 그래서 장학금을 타게 되는 그 기쁨 못지않게 말씀에 담긴 귀한 진리를 깨달음으로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하늘의 지혜를 풍성히 얻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지혜가 제일입니다. 그 무엇보다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 지혜는 오직 말씀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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