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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네 손가락 아저씨 조회수 : 1049
  작성자 : 김종훈 작성일 : 2017-09-08



매주 글을 쓰다 보니 오늘은 이런 글도 씁니다. 한 주 전 토요일, 평택에 결혼 주례가 있어 가는 길이었는데, 어떡하다 운전해주는 부목사님 바로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송탄 시내를 얼마 앞두고 잠시 교차로에 신호 대기차 서있는데, 문득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 앉은 허름하고 남루한 차림의 아저씨 한 분이 보였습니다.


  게다가 몸까지 가만있질 못하고 이래저래 움직이며 아래위로 시선도 오락가락 하는 모습에 좀 이상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 한 아주머니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의 남루한 차림과 이상한 행동에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멀찍이 서있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흘낏흘낏 안 좋은 눈초리로 그 아저씨를 쳐다보기도 하였습니다. 그 아주머니 입장에서야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게, 그 정류장은 비교적 인적도 드물어 약간 무서워서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그 아저씨의 이상 행동은 또 이어졌습니다. 이번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더니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습니다. 그러더니 그걸 무릎 사이에 끼고서는 고개를 숙여 불을 붙이려는 것입니다. 왜 그러나 싶어 자세히 보았더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아저씨에겐 양손 모두가 다, 두 손가락씩 밖에 없었습니다. 필시 무슨 사고로 잃은 듯 했습니다. 그래서 엄지손가락이 아닌 다른 손가락으로 불을 켜려니 자세가 그럴 수밖에... 그렇게 몇 번의 시도 끝에 불을 붙이고 나니 기분이 좋으셨는지 그 불붙은 담배를 두 손가락에 끼고서는 입으로 가져가 깊게 빨아 당기더니 하늘을 응시하며 기분 좋게 연기도 뿜었습니다.


  참, 담배 피는 게 그렇게 좋아 보이긴 처음입니다. 순간이었지만 맘이 짠했습니다. 잠시라도 그를 이상하게 보았음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이번엔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냈습니다. 분명 폴더폰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전화기를 오른쪽 무릎에 올려놓고서는 손가락 두 개로 능숙하게 열더니 번호 몇 개를 눌렀습니다. 그리곤 귀에 갖다 대며 만면의 미소를 띠며 뭐라고 뭐라고 대화를 이었습니다. 그 행색에 뭐 대단한 사람과의 통화는 아니었겠으나, 그래도 그 전화를 기쁘게 받아줄 누군가였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날 잠깐의 신호 대기 중에 본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신호가 바뀌어 출발했는데요. 비록 그 아주머니는 여전히 째려보며 그 옆을 피하고 있었지만, 왠지 제겐 긴 여운이 남는 짧은 경험이었습니다.
  비록 가진 것 없지만 그래도 주머니엔 담배 한 개비 들어있어 순간이나마 시름을 잊고, 비록 사람들은 자길 피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자신의 전화를 받아줌에 미소 짓는 그 모습이 참 흐뭇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서 결혼식을 갔는데요. 그래서인지 그날의 신랑신부가 더 행복해 보였습니다. 이렇게 잠깐이 아닌 영원히 곁을 지켜줄 사람을 저들은 만난 거니까요.


  그렇습니다. 사람이 힘들고 괴롭고 외로울 때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 있으면 위기는 넘기는 것 같습니다. 무엇 하나라도 그 마음 잠시 달랠 것 하나만 있어도 고통은 잊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 힘으로 사람은 또 털고 일어납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오늘 내 옆자리에도 그분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여러분이 내민 손 한 번에 큰 위로를 받을 이, 국수 같이 먹자는 그 말 한마디조차 고마워할 이. 지난 주 유난히 더 힘들고 외롭게 산 분일수록 그런 호의는 더 고맙게 다가가겠지요. 그러니 특별히 오늘은 주변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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