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맛’과 ‘멋’ | 조회수 : 1136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17-10-14 |
피천득 선생은 그의 책, <인연>에서 다음과 같이 ‘맛’과 ‘멋’에 대한 개념을 구분했다. “맛은 감각적이지만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지만 멋은 은근하다. 맛은 생리를 필요로 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 맛은 그 때 뿐이지만 멋은 여운이 있다. 맛은 얕고 멋은 깊다. 맛은 현실적이고 멋은 이상적이다. 정욕적 사랑은 맛이요 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다.
그렇다고 맛과 멋이 반대어는 아니다. 사실 그 어원은 같을 지도 모른다. 맛있는 것의 반대는 맛없는 것이고, 멋있는 것의 반대는 멋없는 것일 뿐. 반대말은 아니다. 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것이다. 맛은 몸소 체험해봐야 알지만 멋은 바라만 봐도 충분하다. 맛에 지치기 쉬운 나는 그래서 멋을 위하여 살아간다”
참으로 공감되는 말, 한마디 토달 것 없는 완벽한 정리, 어쩜 그리도 맛깔스럽게 맛과 멋을 잘 표현하셨는지 역시 멋있는 분이시다. 그러니 다음의 내 표현들은 분명 사족(四足)이렸다. 허나 워낙 글이 감동된 터라 그 여운이라도 이을 양으로 조금만 더 묵상해보려 한다.
그러고 보니, ‘맛’과 ‘멋’의 차이는 갈수록 변한다는 것과 갈수록 진해진다는 것에도 있는 것 같다. 맛있는 것은 갈수록 맛없어지지만 멋있는 사람은 갈수록 더 멋있어져간다.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더 좋은 것과 같은 이치. 그래서 ‘멋’은 언제나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다. 패기발랄한 젊음도 좋지만 중후한 신사에게서 느껴지는 ‘멋’도 좋다. 희끗희끗 센머리의 인생 깊이는 젊음의 생기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참으로 고귀한 ‘멋’이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교회 성가대에도 그런 분이 계시다. 백발의 찬양대원, 그냥 서계신 것만으로도 은혜가 된다. 그런가 하면 백발의 교회학교 교사. 손주 같은 아이들을 위해 인생의 녹아든 경험으로 정성껏 가르치고 돌보는 참으로 멋진 분들이시다.
물론 백발의 도시락 봉사자들도 그러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연세가 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귀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체력이 있음에 감사하시는 분들. 또 주일마다 국수봉사로도 섬기시는 봉사자들. 국수의 그 진한 국물까지도 그 인생의 깊이와 맛 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국수의 맛도 맛이려니와 그 섬김이 더 멋있는 분들이다. 그저께 있었던 교우 천국환송예배도 마찬가지. 명절연휴임에도 부름 받고 나와 특송으로 섬겨주신 천국소망중창단 분들 역시 얼마나 멋있던지. 그 외 주차봉사로, 목자로, 성전청소 등으로 오늘도 어김없이 주님 부르신 자리를 지키시는 분들 모두가 다 그런 분들이시다.
그러고 보니, ‘맛’은 ‘내는 것’이지만 ‘멋’은 ‘드는 것’인 것 같다.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은 색을 낸 게 아니라, 물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맛’은 인위적이나 ‘멋’은 자연스럽다. ‘맛’은 ‘DOING’이지만 ‘멋’은 ‘BEING’이다. ‘맛’은 혀로 신맛 짠맛 단맛 매운맛을 알지만, ‘멋’은 눈으로 귀로 마음으로 느낀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서 신앙인으로서의 멋도 드신 분들. 55년 역사 못지않은 우리 교회의 자랑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쭉 그러기를 소망한다. 모인 사람들의 숫자보다 사람들의 면면이 진국인 교회,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매력있는 교회, 굳이 선전하지 않아도 저절로 풍겨나는 ‘멋’이 있는 교회, 생각만 해도 좋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멋진 장로님, 멋진 권사님, 멋진 집사님, 멋진 청년, 멋진 학생, 멋진 교사, 멋진 목자, 멋진 봉사자, 멋진 성도가 많은 멋진 교회. 생각만 해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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