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인생의 절반을 설교자로 살며 | 조회수 : 914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18-02-27 |
돌이켜보니 벌써 내 나이의 절반,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난 설교자로 살아왔다. 주일이면 어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교회 강단에 섰으며, 수많은 성도들이 나의 설교를 들었다. 처음엔 학생들이 대상이었으나 나중엔 장병들과 군인가족이 대상이었고, 지금은 주로 어른들이 그 대상이다. 대체 그동안 무슨 설교를 어떻게 전했는지는 다 기억할 수 없다만, 그래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외쳐왔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놀랍다.
가끔 보관중인 옛 설교문을 들여다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그때의 성도들에게 미안하다. 나의 얕은 묵상의 산물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잘났다며 “내 설교 한 번 들어보라”는 식으로 외쳐댔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고도 끔찍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설교자로 사용하고 계심에 놀라울 뿐이며, 지금도 내 설교를 진지하게 듣는 성도들이 감사할 뿐이다. 이 설교에도 위로받고 힘 얻으며, 지혜 얻고 소망 얻으며, 삶이 변화되고 있음에 감격할 뿐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설교에는 상상을 넘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분명 설교의 소재가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일 게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는 말씀은 정말 진리임을 절감한다. 난 그걸 전달하는 통로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설교를 듣는 대상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아이로부터 노년까지 80년의 나이 차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도 설교를 들을 수 있다. 현재 우리 교회에도 장년 예배에 엄마 아빠를 따라 나오는 초등학교 아이가 있다. 부모님 말씀에 의하면 내 설교가 걔들에게도 들린단다. 그리고 재미있단다.
또한 학벌 제한도 없다. 우리 교회에는 배울 만큼 배운 박사도 여럿 있지만 초등학교를 못 나온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설교 듣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설교가 너무 수준 낮다”고 불평하는 박사도 없고, “너무 어려워 못 알아듣겠다”는 이도 없다.
또한 신앙의 연륜 제한도 없다. 우리 교회를 55년 지켜온 장로님이나 오늘 교회를 처음 나온 사람이나 말씀 앞에서 눈물 흘리긴 매한가지다. “55년간 들었으니 다 안다”며 귀를 닫는 이도 없고, “사전 지식이 없어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초신자도 없다.
그런가 하면 주시는 은혜도 다양하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말씀을 전해도 듣는 이들의 형편과 상황마다 비춰주시는 감동과 도전의 빛의 각도가 다 다르다. ‘사랑’을 설교했는데도 ‘감사’가 꽂혔단 이가 있는가하면, ‘용기’란 단어를 새겼다고 고백하는 이도 있다. 저들의 피드백은 언제나 날 놀라게 한다. 게다가 하나같이 다 자기한테 하시는 말씀 같단다. 너무 신기하다.
물론 그 중에서도 제일 놀라운 일은 내게 때마다 그런 말씀을 주시는 일이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그 말씀의 우물에서 늘 은혜의 물을 긷게 하신다. 단 한 번도 그 물은 마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설교한다. 지난 한해도 이래저래 횟수로는 400번 가까운 설교를 했고, 오늘 주일 아침도 역시 다섯 번의 설교를 쏟아내고 있다.
설교자는 요리사다. 싱싱한 원 재료를 이용하여 영양도 살리고 맛도 내야 한다. 그래야 한 그릇 잘 먹고 각자 삶의 자리로 힘차게 나아간다. 그래서 고민이다. 세상살이에 영혼 주린 이들이 오늘도 즐비한데, 말씀의 식탁 앞으로 오늘도 이렇게 몰려오는데, 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여 맞이해야 할지, 그 일이 기쁘기도 하지만 고민이다. 물론 고민이기도 하지만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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