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에벤에셀(Ebenezer) | 조회수 : 1065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18-06-06 |
물론 옳은 말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아직 이런 구절까지 가슴 깊이 와 닿을 나이는 아닌데, 왠지 요즘은 사무엘상 7장 12절이 참 와 닿는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Thus far has the LORD helped us.)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여기까지 하나님 날 도우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난 없었을 거라는 고백. 생각해보면 너무나 정직한 고백 아닌가! 아마도 이는 일주일 전, 어느 권사님 칠순예배 말씀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궐동굴다리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아시다시피 오산시에는 남북을 가로지르며 동서로 지역을 두 쪽 내는 경부선 철길이 있다. 그래서 오산의 동(東)과 서(西)는 고가도로나 굴다리 형태로만 소통되는데, 궐동굴다리도 그 중 하나다. 사실 폭은 얼마 안 된다. 해봐야 2차선 도로에 작은 인도 하나 있으니 뭐 20미터나 채 될까? 경부선의 총 길이 445km에 비하면 1/22,500밖에 안되는, 극히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그 굴다리는 절대로 무시되면 안 된다. 정말이지 만의 하나라도 그것이 부실해지거나 무너지면, 대한민국 국가기간망에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대혼란이 일어난다. 세어보진 않았다만 아마도 전철과 화물 열차까지 포함해 그 위를 지나는 기차는 하루 400대는 족히 될 것이다. 그러니 그 궐동굴다리는 길이와 상관없이 중요하다. 그러니 아무리 멋진 여행을 꿈꾸며 서울역에서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은 승객이라 할지라도 궐동굴다리 하나 잘못되면 병점 쯤에서 그 여행은 접어야 한다. 따라서 서울역을 떠난 승객이 부산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은 궐동굴다리를 비롯해 그 철로의 단 한 구간도 손상됨이 없었단 뜻이 된다.
인생도 그러하다. 나 역시 출생 후 지금까지 약 19,000일 정도를 살았다. 그러니 그 중 단 하루라도 내 인생의 날이 끊겼다면 지금의 난 없다. 지난 일주일만 하더라도 168시간, 10,080분의 시간들 중 단 1분이라도 끊겼다면 나의 오늘은 없다. 안타깝지만 내 인생 여행은 지난 주로 끝났다.
그러므로 지금도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건, 내 인생의 그 많은 날들 중 그런 끊김이 단 1분도 없었단 뜻이다. 막힘없이 이어졌단 뜻이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가? 어찌 여기에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으리. 날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 역시 없었으리.
따라서 이는 그 어느 한 사람도 내 차량과 박치기도 하지 않았음이며, 날 해하지도 않았음이다. 죽을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혹 걸렸다 해도 주변의 누군가가 적시에 나를 도왔음이다. 내가 다리를 건널 때나 건물 안에 있을 때도 다행히 무너지지 않았고, 내가 배나 비행기를 탔을 때에도 다행히 좌초되거나 추락하지 않았으며, 내가 산을 오를 때에도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았음이다. 그 어떤 유행하는 질병도 내 목숨을 앗아가지 못했고, 그 어떤 음식도 내 목숨을 위태롭게 할 만한 음식이 없었음이다. 그러니 이는 참말로 기적 같은 일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의 결과이다. 그러니 이 은혜 아는 것 또한 믿음임을 깨달으라.
권사님의 칠순예배에 그래서 이 말씀을 전했다. 그랬더니 권사님도 ‘아멘’하는 눈치다. 그래서일까? 오늘 부르는 301장 찬송은 더 없이 은혜롭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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