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축도사진을 받아들고... | 조회수 : 1260 |
작성자 : 담임목사 | 작성일 : 2015-07-02 |
지난 주 교회주차장에서 한 집사님으로부터 나의 축도사진이라며 액자까지 만들어놓으신 선물을 건네받았다. 내가 보기에도 간만에 잘 나온 사진이라 흡족하여 “어떻게 찍으셨냐” 그랬더니, “축도 사진이 목사님껜 잘 없으실 것 같아서.... 지난 송구영신예배 때 새해를 시작하는 성도들 축복해주시는 모습이 너무 귀해 보여서...”라신다.
그 말씀에 더욱 흡족하여 목양실에 놓아두니 참 여러 생각이 스친다. 그러고 보니 내 22년 목회사역에 축도 사진은 이제 두 장이 되었다. 하나는 해군항공단 군목시절(2000년 1월)에 군종병이 찍어 준 사진인데, 그때는 일부러 부탁해서 찍었다.
이렇게 설교하는 사진이야 더러 있으나 축도 사진은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축도 시간에 누가 기도도 안하고 용기있게 앞에 나와 대놓고 사진을 찍기란 쉽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아무튼 목사가 성도 축복하는 일이 가장 귀해 보인다는 말씀에 다시 가슴이 뭉클해진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권세가 다시 영광스러워진다. 저들이 저리 생각하니 더 진지하게, 더 간절하게 하늘의 복을 비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다.
축복기도! 어쩌면 이는 설교하는 일보다, 가르치는 일보다, 행정하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일지 모른다. 그래서 전도사가 목사안수를 받으면 제일 먼저 하게 하는 일도 설교가 아닌 '축도'다. 목사가 되는 순간, 이제는 성도들을 공적으로 축복할 수 있는 합법적 지위를 얻었다는 표시인 셈이다. 그야말로 축도는 목사가 가진 특권 중의 특권이다.
그렇다면 난 이 일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혹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한 일은 없는가? 다시 마음을 다 잡기 위해 나의 신학대학원 졸업논문집도 들춰보았다. “고린도후서 13:13, 축도본문의 바른 이해와 적용”이라는 논문인데, 지도교수님께도 꽤 칭찬을 들었던 나의 자랑스런 논문이다.
성경 속에 나오는 모든 축복들도 다 뒤지고, 교단별로 목회자들도 여럿 만나 축도에 대한 견해를 듣고, 국내 다른 신학대학에서 목회학을 가르치는 교수님들도 여럿 만나면서 내 나름으로 축도에 대한 성경적 기준과 모델과 정신을 정립해 본 일. 그 시절 그 뜨거웠던 가슴도 다시 느껴보았다.
그때 내가 먹었던 마음, ‘목회자가 성도의 삶을 위해 공적으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비는 이 축도야 말로 예배의 대미(大尾), 목회의 백미(白眉)’라고.
그러니 오늘밤부터 다시 마음을 새롭게 먹어야겠다. 매일 밤 성경일독기도회에 오시는 분들을 위한 안수기도부터 더 기도로 준비해야겠다. 구푸려 기도하려니 어떨 땐 허리가 끊어지는 듯하고, 크게 기도하려니 목이 쉬고, 힘을 다하려니 기가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 사택에 돌아오면 허기진 배를 꼭 뭐라도 채우는 버릇까지 생겼지만, 주님이 내게 맡긴 고유한 권세이니 기쁘게 사용할 것이다.
혹 너무 세게 기도하다가 나의 입속 침까지 발사될지라도 다 이해해주시리라. 그렇게 해서라도 하늘의 복이 저들에게 임한다면 그게 무슨 문제랴.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듯이, 나도 내가 축복한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정말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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