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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내 인생의 첫 단어 조회수 : 1122
  작성자 : 김종훈 작성일 : 2020-02-07



  오늘은 우리 교회 어르신들께는 좀 죄송할 수도 있는 얘기 하나 하련다. 이미 그분들에게는 벌써 익숙해지셨을 일이지만, 내겐 처음 맞닥뜨리는 일이니 정중히 이해를 부탁드린다. 


  지난 주일 난, 내 생애 처음으로 들어보는 말 한마디를 궐동성전 주차장에서 들었다. “목사님도 이젠 머리가 ‘반백’(半白)이시네요”... “목사님, 이젠 흰머리가 조금씩 보여요”라고 처음 그 얘기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백’이라니... ㅠㅠ... 참 기분이 묘했다.


  돌아보니 세교성전 입당 후부터 부쩍 그리된 것 같은데, 그간 나도 힘에 많이 부치긴 했나 보다. 그게 머리카락 색깔로도 나타나버렸다. 하지만 그 댓가로 하나님이 이만큼 은혜 주신 것도 분명하니 그냥 영광스런 면류관쯤으로 여기련다.  


  두 번짼 ‘불면증’이다. 처음엔 누워도 잠이 잘 들지 않는 형태로 시작되더니, 요즘은 새벽 2-3시경에 깨면 다시 더 이상은 잠이 들지 않는 형태로 변형되었다. ‘불면증’이란 말, 이거야말로 남 얘기로만 알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게도 찾아왔다.  


  아직 뭐 심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냥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니 그리 된 것 같다. 하여간 나름 기도도 하고, 자세를 바꿔 누워도 보지만 쉽지는 않다. 그래서인가? 금향로기도회 때마다 “짧은 잠에도 단잠 자게 해 달라”고 했던 나의 기도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필요한 은혜임을 요즘 더 절실히 깨닫고 있다. 이래저래 잠 못 이루는 성도들 생각도 더불어 난다.


  세 번짼 ‘안경’이다. 아직 평상시나 강단에서까지 쓸 정도는 아니지만, 이제 책볼 때만큼은 조금씩 필요함을 느낀다. 확실히 예전 같지 않고, 눈꺼풀도 무겁고, 자주 깜박이는 버릇까지도 생겼다. 설교할 때 강단에 서서 보는 모니터 글씨까지도 어떨 땐 희미하다. 이참에 글씨를 다시 키워야 하나, 아니면 설교 때에도 안경을 써야 하나? 아~ 소실 적엔 2.0까지도 뽐냈던 육백만불의 사나이 스티브 오스틴의 시력은 어데로 갔나? 비 오는 날 버스정류장에서 제일 뒤에 오는 버스 번호까지 정확히 맞춰 친구들보다 먼저 뛰어갔던 그 시력은 어데로 갔나? 아무튼 안구운동도 더 열심히 해서, 안경 쓰고 강단에 서는 날만큼은 최대한 늦춰 보련다.      


  네 번짼 ‘오십견’(五十肩)이다. 한 달 전부터 원인도 없이 오른쪽 어깨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부쩍 요즘 심해졌다. 특히 샤워할 때 오른손으로는 등 밀기도 어려워져 결국 병원을 찾았다.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 말씀이 ‘오십견’이란다. 이 또한 내 인생에 처음 들어본 말. 


  5,6년 전인가? 동네 병원에 감기몸살로 갔는데, 순서를 기다리는 나에게 간호사가 아직 40대인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적잖은 충격 먹었을 때가 다시 생각날 만큼 이번 일 또한 충격이다. 아니 왜 그 간호사분은 “선생님”, “환자분”, “김종훈님” 등의 호칭을 다 놔두고 날 “아버님”이라고 불렀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만, 지금은 어딜 가도 그러려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무튼 당분간은 이렇게 동통기, 유착기를 거쳐 회복기에 이를 때까지 치료도 꾸준히 받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할 상황. 그래서일까? 지난주일 예배를 드리며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를 부르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맘껏 두 손 들고 찬양할 수 있는 것도 어찌나 소중하던지.  


  그래서 느낀 것. 이렇게 인생은 수많은 첫 단어들을 해변의 파도처럼 맞닥뜨리며 산다. 앞으로도 더 많은 첫 단어는 기다리고 있으리. 거기엔 나를 기쁘게 하는 단어도 있겠지만, 나를 슬프게 하는 단어들도 있으리. 그러니 이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어떻게 대처하느냐, 무슨 감사를 찾고, 어떤 계획을 찾느냐’는 영적 민감함은 더욱 필요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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