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장마’와 ‘장미’ | 조회수 : 842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20-07-04 |
본격적인 여름 장마가 시작된 지난 수요일 아침, 한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진행자의 오프닝멘트 몇 마디가 내 귀를 붙들었다. 말인즉, “장마와 장미는 점 하나의 차이라서 닮은 게 참 많다”는 것.
그래서 뭔 얘긴가 싶어 더 귀를 쫑긋 세워 들었다. 그랬더니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버리더라. “장미도 그 자체가 붉듯이, 장마도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붉게 변하지 않나? 또 장미를 보면 그 꽃잎이 마치 소용돌이 모양으로 감아 돌아간 것처럼 보이듯이, 장마도 비가 한꺼번에 많이 오면 도로의 맨홀이나 하수구에 그 물들이 소용돌이처럼 휘감겨 들어가지 않나?” 이러는 것이었다.
그 말에 얼마나 실망이 되던지. 뭐 대단한 게 나오리라 기대했던 나로선 그런 걸 글이라고 써서 진행자에게 읽도록 한 그 프로그램 작가의 실력까지 의심할 정도였다. 세상에 그런 억지로 껴맞춘 두 가지 이유만을 가지고 장마와 장미를 닮았다고까지 결론 내려 버리다니... 결국 그 두 가지 이유 외에는 다른 후속타도 없어 보여, 나는 그 실망감에 라디오도 꺼버렸다.
그런데...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말이 그 하루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내게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장마와 장미, 그 상관도 없는 두 캐릭터가 자꾸만 상관있는 것처럼 머릿속에 되뇌어지는 이유는 뭘까?
솔직히 난 장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그냥 5월 말 정도부터 피기 시작하여 피고지고를 반복하다가 10월까지도 그 꽃이 간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그냥 장미가 내 아내의 별명(“순장미”)이기도 해서 좋고, 꽃을 배경으로 사진이나 찍기에도 좋아서 좋아할 뿐이다.
그런데도 그 진행자의 멘트가 지금도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오히려 장마와 장미가 닮아서라기보다 장마보다 장미가 오히려 더 위대하게 느껴져서이다.
보라. 일단 ‘생명력’부터가 다르잖나?. 장미가 장마보다 훨씬 더 끈질기다. 장마야 아무리 세차고 무서워도 지금 시작해서 7월 중순이면 끝나지만, 장미는 약한 듯 보여도 10월까지는 간다. 그 매서운 장맛비에 흔들리고 떨어지고 드러누워도 여전히 장미는 또 피고 또 피어난다.
또 하나는 ‘매력’이다. 그 누가 장마를 매력적이라 하는가? 장마는 늘 파괴적이고, 눅눅하고, 지루하고, 우울하고, 불쾌할 뿐이다. 누구도 장마를 기다리는 이는 없다.
하지만 장미는 다르다. 사람들이 기다린다. 보고싶어 한다. 그 앞에 서면 언제나 황홀하고 즐거우며, 예쁘고 사랑스럽다. 특히 장미는 누굴 초대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는다. 그 고운 자태와 진한 향내가 사람들을 부른다.
그러니 차라리 그 라디오에서도 장마와 장미를 닮았다 하지 말고, 장미가 장마보다 더 매력있고, 더 생명력 있다 했으면 어땠을까? 결코 장미는 이 장마에 지지 않고 살아남을 거라며 차라리 장미를 더 추켜세웠다면 어땠을까? 그냥 내 생각이다.
그러니 이 장미의 매력과 생명력을 우리도 닮았으면 좋겠다. 어떤 모진 비바람에도 꿋꿋이 견디며 더 진한 향내를 발산하는 사람. 부르면 피하고 도망가는 사람이 아니라 부르지 않아도 그 곁을 찾는 이가 많은 사람. 장마처럼 스포티브(Sportive)하지 않고 로맨틱(Romantic)한 사람. 어떤 상황에도 성실한 루틴(Routine)과 숭고한 리추얼(Ritual)로 자기를 지켜가는 사람. 와~ 생각만 해도 멋지다. 아~ 나도 그러고 싶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역시도 그래야지. 비바람 거세게 몰아치는 인생의 격랑 속에서도 감사를 잊지 않고 평안을 잃지 않는 성도. 그럴수록 더 진한 찬양의 향기를 뿜고, 더 진솔한 간증의 스토리를 써가는 성도.
이제 내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시편과 함께 하는 153감사대행진”이 당신을 그런 성도로 변화시키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대하고 참여하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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