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목양실 천장의 쥐 | 조회수 : 909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20-07-24 |
요 며칠 전 다시금 녀석 몇 마리가 돌아왔다. “그동안 잘 계셨냐”는 듯 머리 위에서 신나게 신고식도 치른다. 궐동성전이 지은 지가 좀 오래도 되었고, 목양실 또한 4층에 있다 보니 가끔 심심찮게 녀석들이 나타나 한바탕 운동회까지도 벌이곤 했었는데, 한동안 뜸하다 싶었던 쥐들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사실 쥐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쥐를 캐릭터로 미키마우스(Mickey Mouse)를 만든 월트디즈니(Walt Disney)가 아니고서야 일반 사람들은 거의 쥐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그렇다. 특히 해군의 군목 시절, 3개월간 군함을 타고 해외순항훈련을 나갔을 때에도, 배를 탄지 3개월쯤 되어가니, 이제는 수시로 쥐들이 발밑으로 지나다니고, 천장 케이블도 타고 다니는데 그것만으로도 참 섬뜩하더라. 게다가 한번은 잠을 자는데 큰 쥐와 눈이 마주쳐 기겁한 일도 있었고, 소위 ‘끈끈이’로 밤새 잡힌 쥐 두 마리를 아침에 내다 버리면서는 구토할 뻔한 일도 있었고, 심지어 밤에 자다가 내 발 위로 쥐가 지나간 적도 있어 그 섬뜩함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 역시도 쥐라면 정말 싫은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런데 요 며칠 다시 출몰한 쥐에 대해선 약간 다른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옛날 어릴 적 셋방살이 시절 추억마저 살려준 것 같은 반가움, ‘아니 어디 편히 쉴 곳이 없어 이 교회 꼭대기 목사님 사무실 천장까지도 찾아왔을까’하는 안타까움, 게다가 ‘여긴 먹을 것도 없을 텐데’ 싶은 미안함마저도 드니, 대체 이 마음은 뭔지 모르겠다.
게다가 고마운 마음까지도 좀 있다. 지금까지 걔들이 나타났던 때를 생각해보면, 내가 성경을 읽거나 묵상을 하거나 설교 준비를 할 때에는 이상하게 조용했던 것 같다. 확실히 그랬다. ‘얘들이 뭔가를 아나?’ 싶을 정도로.
주로 얘들이 광란의 탭댄스를 출 때는 내가 퇴근도 못하고 밤늦게까지 목회 고민에 빠져 머리 싸매고 있을 때, 주로 그럴 때 한바탕 내 고민을 다른 데로라도 돌리려는 듯 나타나곤 하였다. 설마 걔들이 그걸 알리야 만무하지만, 난 그렇게 받아들였다. 짜~식들, 참 예의도 바르고 에티켓도 넘치는 놈들 같으니라구.
그래서 이젠 걔들이 싫지만은 않다. 가끔씩 출몰해줌도 반갑다. 그래도 교회와 목사님 방에 대한 기본 예의와 에티켓은 있는 애들이니까.
‘예의’하니까 생각난다. ‘예의’(禮儀)란, ‘사회생활이나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존경의 뜻을 표하는 공손한 말투나 몸가짐’인데, 에티켓(etiquette)이라고도 부른다.
따라서 이는 참으로 중요하다. 특히 교회는 더욱 예의가 발라야 하고, 에티켓이 있어야 하는 장소다. 아무리 하나님 바라보고 왔다지만, 부족한 예의와 에티켓 때문에 상처받는 이들도 의외로 있으니까.
예컨대 여전히 예배 시간에 휴대폰이 울리는 것, 여전히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섬기는 사람 따로, 섬김 받는 사람 따로’, ‘인사하는 사람 따로, 인사 받는 사람 따로’라고 여기는 것, 아무데서나 쉽게 반말하고 심지어 회의 때도 남의 말 무시하는 것, 어리다고 새신자라고 가볍게 대하고, 교회 일 하다가 알게 된 교우에 관한 좋지 않은 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누설하고, 확인되지도 않은 일을 알아보지도 않고 남에게 퍼트리고, 형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사람의 상황을 쉽게 판단하여 결론 내리고, 자기 경험 강요하고, 하나님 뜻이라며 이상한 걸 주입하고... 참 예의 없는 일들이다.
교회는 공동체, 질서와 예의는 기본. 누구라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듯, 누구라도 존중할 책임도 있다. 이 예의와 에티켓을 잘 지키는 이가 믿음 좋은 성도, 예수 닮은 제자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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