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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JTBC 연속토론 “집단감염 진원지? 논란의 교회” 시청 후기 조회수 : 941
  작성자 : 김종훈 작성일 : 2020-09-12



며칠 전, 꽤 시청률도 높은 JTBC 뉴스에서, 의외로 교회 문제를, 그것도 생방송으로 다뤄주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교회를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고발적 성격이 아니라, 교회 문제를 놓고 쌍방의 입장도 들어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듯 보였다. 내심 반갑고 고마웠다. 게다가 잘 아는 목사님도 출연하셔서 더 좋았다.

그래서 기대도 컸다. ‘야~ 오늘은 좀 제대로 정리가 되겠군. 그동안 코로나-19 탓에 의도하지 않게 국민들 인상만 찌푸리게 하는 막무가내 교회로만 비춰졌는데, 오늘로서 '이젠 교회 입장도 이해된다’는 분위기도 생기겠군. 아마도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잘만 설득한다면, 이참에 실추된 교회 이미지도 회복하고, 나아가 비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설득력 있는 선교적 메시지도 전달될 수 있을 거야.’ 이런 기대에도 부풀었다.

하지만 결과는 좀 아쉬웠다. 외려 야단만 더 맞은 듯했다. 심지어 자기도 3대째 기독교 집안이라고 소개하며 패널로 나온 모 목사님에게서는 생각 외로 교회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이 팽배함을 보았고, 오히려 여태껏 한 번도 교회 가본 적 없다며 불신자로 자신을 소개한 모 평론가에게서는 생각 외로 작금의 교회 관련 상황을 잘 대변해주는 아이러니가 보였다.

아무튼 그렇게 며칠이 지난 지금,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여전히 우울하다. 그래서 내 마음만이라도 다시 정리하고 싶었다. 하여 이렇게 펜을 들었다. ‘혹,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난 무슨 말로 답했을까’도 생각하면서...

먼저 첫째는, ‘코로나 재확산에 따른 교회의 책임론’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사실 이에 대해선 그 책임을 면피할 생각을 가진 교회는 어디도 없으리. 이 땅에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할 시대적 사명을 가진 교회가 그마저 부인할 리는 없으니까.

비록 내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 해도 어느 정도의 연대책임은 나부터도 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처음 신천지발 확진자의 폭발적 증가에 온 교회가 준비도 없이 갑자기 문을 닫았지만, 그 누구도 그 조치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교회는 시대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고, 생명 살리는 교회여야 함을 모두가 인식했기 때문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교회는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교회가 누군가를 찌르는 칼이 되어서는 안되겠기에 전적으로 교회는 이 조치에 순응한 것이다.

그뿐인가? 한국교회는 지난 136년 선교역사에 괄목할만한 헌신을 참 많이 해왔다. 이 땅 백성들을 개화하고 선도하고 섬기는데 최선을 다했다. 결코 성도들을 교회 안에만 가두지 않았고, 할 수 있다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가르쳤다. 그야말로 교회는 이 땅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런데도 작금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교회의 책임론만 유독 부각되는 건 의아하다. 철저히 방역을 솔선해 온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로선 억울하기도 할 테다.

물론 일부 교회가 통로가 된 건 맞다. 그래서 그 교회들에 대한 정부의 폐쇄 조치와 책임 추궁도 정당하다. 하지만 이를 가지고 이 땅의 모든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는 건 누가 봐도 ‘일반화의 오류’(The fallacy of hasty generalization)이다. 난세의 문제를 대하는 가장 어리석은 방법은 어떤 특정 집단을 지목하여 그들만 혐오하게 만드는 것인데, 작금의 대한민국이 그렇게 돼버렸다.

그렇다고 이를 정부 당국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리. 하지만 이로써 정부가 져야 할 책임만은 확실히 피했다. 외려 박수까지 받으며 선거에서도 이겼다.

하지만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더욱 커져 코로나-19로 인한 2차, 3차 피해도 양산했다. 백성들은 난세가 닥치면 기분이라도 풀려는 마음에 집단적으로 손가락질 할 대상을 찾기 마련인데, 그에 정부와 언론은 교회를 타깃으로 지목해준 셈이다.

그 결과로 교회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숫자 줄고 헌금 줄어든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교회 다니는 학생, 교회 다니는 직장인, 교회 다니는 이웃들에 대한 사회적 혐오감이 도를 넘었다. 교회와 성도들을 뭐 보듯 하게 만들었다.

과연 정부는 이를 아는지 모르겠다.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며, 대한민국 국민인데 말이다. 이태원 게이클럽 확진자에 대해서는 혹이라도 혐오의 대상이 될까봐 온갖 배려를 다 해주더니, 교회 확진자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배려가 없었다. 평소에 게이클럽이 뭘 그렇게 잘했나? 평소에 교회가 뭘 그렇게 못했나?

그렇다고 이를 교회가 책임이 없다는 말로 듣지는 말아라. 다만 이로써 정부와 언론이 교회에 대한 비판적 언급을 생각 없이 내보냄으로써 가뜩이나 힘든 난국에 억울한 사람만 더 증가시킨 책임은 지라는 것이다. 구더기 잡느라 초가삼간까지 태우려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지혜로운 건 아니다.

둘째는 ‘왜 유독 교회만 예배에 목숨을 거냐’에 대한 토론이었는데, 난 개인적으로 이에 대해서만큼은 시원한 답이 그 토론 마당에서 나오기를 바랬다. 성도에게 있어 예배는 목숨과도 같다는 우리끼리의 말을, 세상 사람들도 이해하도록 그 기회에 조금만 더 세련되고 설득력있게 전했다면 참 좋았겠다 싶다.

사실 ‘비대면은 허용’이란 단서가 붙긴 했지만, ‘예배 금지’란 말에 유독 기독교인들만 발끈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역사적 이유이고 하나는 개인적 이유인데, 사실 기독교는 무수한 박해의 역사를 뚫고 여기까지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AD 64년 로마의 대화재 사건으로 촉발된 네로 황제의 박해로부터 무려 250년 동안이나 이어진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지울 수 없는 피의 역사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차라리 신앙은 지킬지언정 목숨은 아까워하지 않았다. 안되면 숨어서라도 예배하였고, 죽더라도 예배하였다.

성경 속 역사에도 그런 일은 차고 넘친다. 우리나라 기독교 선교 역사 또한 그랬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에서도 교회는 박해를 통해 그 정신을 이었다. 아마 이는 천주교나 불교도 그랬으리.

그렇다면 왜 그들은 목숨마저 내놓으며 신앙을 지키려 했을까? 다 이해는 못하겠지만, 그만큼 신앙인들에게 있어 신앙은 숭고한 가치란 뜻이다. 그래서 아마 ‘전면적 대면예배금지’란 정부의 말만으로도 화들짝 놀랐으리.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같은 게 되살아났으리. 그러니 정부도 국민도 이에 대해서만은 좀 이해가 필요하리라.

또한 이에는 개인적 이유도 있는바, 대부분의 경건한 신앙인들은 자신이 믿는 신앙의 도리로 인생이 달라지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세상을 사는 새로운 가치와 의미에 새로운 눈을 떴다고나 할까?

따라서 그들은 힘들고 어려울 때 필요한 위로와 소망, 평안과 기쁨, 용기와 지혜도 거기서 얻는다. 혹 주변에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는 사람 있으면 누구라도 붙들고 물어보라. 다 그리 답할 것이다.

그러니 이는 너무나 숭고한 경험이다. 그 누구라도 자기 '목숨을 위하여'서만 사는 이 시대, 자기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킬만한 가치를 그들은 가졌음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예배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아디아포라(ἀδιάφορα)의 영역은 분명 아닌 것이다.

하여 이런 코로나-19와 같은 때엔 그 신앙이 주는 도움을 더욱 필요로 한다. 사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피해 못지않게 '코로나 블루'(Corona Blue)의 피해 또한 얼마나 큰가? 대다수 국민들은 지금 우울지수, 염려지수, 분노지수가 위험 수위에 올라 있다. 자살자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늘었다.

그러니 국가는 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조금이라도 그 지수를 누그러뜨릴 방법을 맞춤형으로 찾아야 한다. 그게 기독교인들에겐 '현장예배'다. 모여서 드리는 '공동체예배'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기독교인들에게만큼은 확실히 그것은 마음방역의 특효약이다. 마음백신의 최고봉이다.

자, 그렇다면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만 해도 얼마나 될까? 자그마치 1/6이다. 그러니 그들이 그렇게라도 힘 얻도록 돕는 것은 나쁜 선택이 아니다. 적지 않은 수의 국민을 스스로 치유하도록 오히려 돕는 길이다. 단, 방역조치는 더 철저히 하게 해야겠지. 만약 지키지 않아 확진자가 나오면, 해당 시설에 대해서는 엄벌도 내려야겠지.

그러니 언제까지 카페 몇 군데 터졌다고 전국 카페 다 문 닫게 할 텐가? 학원 몇 군데 터졌다고 언제까지 전국 학원 다 문 닫게 할 텐가? 바이러스 잡자고 사람 잡는 일만 자꾸 늘인다면, 그로 인한 2차 3차 피해 역시 더 눈덩이처럼 늘어만 갈 것임을 명심하라.

그리고 셋째, ‘전광훈 목사와 그 집회에 대한 토론’도 있었는데, 이 역시도 구분은 필요해보인다. 그래서 드리는 부탁. 난세일수록 감정적 대응은 자제하고, 이성을 찾으라.

솔직히 문제 삼고 있는 815집회만 해도 그렇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진 몰라도 그래봐야 그 숫자가 한국교회 전체 성도의 몇%나 되겠나? 그런데도 한국교회 전체를 동일집단으로 보는 건 너무나도 감정적이다.

모이진 않았어도 그에 동조하는 이들은 한국교회에 많지 않냐고? 그렇다면 그건 왜 나쁜가? 그게 민주주의 사회 아닌가? 그거야말로 양심의 자유다. 양심의 자유란, 반대할 자유도 포함됨을 나도 학교에서 배웠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은 원래 욕먹는 자리이니, 그래서 백성들 속이라도 시원해진다면 대통령은 그 욕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지금의 대통령도 동의한 바다. 이전의 대통령도 그래서 욕해서 탄핵시켜 새 역사 만들지 않았나? 그러므로 지난 815집회의 주장과 방식은, 그래도 이 땅에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준 증거다.

게다가 그 광장의 수만 명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설마 그 광장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나이든 분들이라고 그들의 주장들까지 평가절하하진 않겠지. 광장에 젊은이들이 모이면 그 주장은 옳고, 어르신들이 모이면 무시해도 된다? 어디서 그런 못된 걸 배웠나?

게다가 그들을 코로나 재확산의 주범으로 보는 것 역시 과학적이지 못하다. 이미 815집회 전부터 재확산은 시작되었다. 오히려 그것은 정부가 쿠폰까지 나눠주며, 사회적거리두기를 해제해도 좋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면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그걸 비겁하게 덮으려 하면 안된다.

그러니 제발 이 난세에 더 이상 누구를 적으로 만들지 말아라. 하나도 도움 안된다. 차라리 그 욕을 정부와 대통령이 먹으시라. 미안하지만 당신들은 그러라고 있는 분들이다. 그게 국민을 분열시키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며, 2차 3차 피해도 막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넷째는,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반성할 게 없는가'하는 주제였다. 아니 왜 없겠나? 당연히 있지. 특히 한국교회는 태도의 잘못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번에도 그 태도는 무례했다. 공감적이지도 못했고, 막무가내로만 보였다. 어른의 큰 가슴으로 안아주기는 커녕 어린아이처럼 투정만 부렸다. 교회 입장만 주장하느라 일반 국민의 아픔을 헤아리는 데에는 부족했다.

특히 전광훈 목사와 집회 참가자들은 더 그랬다. 물론 과거의 정권 퇴진 운동이야 이보다 더 심했을 수 있다. 화염병 던지고, 경찰 때리고, 심한 욕도 퍼부었다. 하지만 그들은 교회의 이름으로 모인 게 아니다. 그러니 그들의 말과 태도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엔 누가 봐도 교회의 이름으로 모였다. '할렐루야'와 '아멘'이 광장에 메아리쳤다.

그렇다면 예의는 지켰어야지. 믿는 자로서의 선(線)은 넘지 말았어야지. 하지만 넘었다. 전도는 못할망정 하나님 영광은 가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완전히 가렸다. 그게 아쉽다.

혹, 전광훈 목사의 역사의식과 주장이 옳았다고 치자. 그래도 태도는 틀렸다. 그래서 그 주장마저도 덮이는 우(愚)를 자초했다. 그 무례함이 도(度)를 넘었기에 작년 10월 3일, 아무리 100만명 넘게 광장에 모였어도 국민적 호응은 얻지 못했다. 그것이 원인이 되고 역효과가 되어 선거에서까지도 보수를 패배하게 하였다.

따라서 전광훈 목사와 거기 모인 분들은 국민들이 뭘 진짜 보고 계셨는지를 분명히 알았어야 했다. 주장은 할 수 있지만 태도는 바르기를 원했다. 왜? 교회니까. 목회자이고 성도들이니까. 찬송까지 부르고 기도까지 했으니까. 교회는 공의도 외쳐야 할 집단이지만 사랑은 더 많이 외쳐한다는 것 쯤은 국민들도 다 아시니까.

그러니 교회와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예(禮)를 가져야 한다. 격(格)을 잃지 말아야 한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 그렇지 못했던 게 나로서는 두고두고 아쉽다. 목회자의 한사람으로서 미안하고도 부끄럽다. 그러니 부디 앞으로는 안그랬으면 좋겠다.

이상(以上)이, 나도 그날 토론자였다면 몇마디 붙여보고 싶었던 내용들이다. 이 답답한 마음, 여기라도 풀어놓고 싶었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들의 넓은 양해를 바란다.염 진원지? 논란의 교회” 시청 후기|작성자 등경 위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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