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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나님' 없는 성경책 조회수 : 120
  작성자 : 김종훈 작성일 : 2020-10-09





대부분은 알고 계시겠다만, 그래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성경에 관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성경 66권 중에는 ‘하나님’이란 글자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책이 있다는 사실. 정말이지 그 책엔 ‘여호와’란 글자도, ‘기도’니 ‘찬양’이니 하는 글자도 없다. ‘할렐루야’나 ‘아멘’ 같은 말도 없다.

무슨 그런 책이 있냐고? 있다. 바로 ‘에스더’다. 믿지 못하겠거든 확인해보라. 정말 그 책엔 단 한 구절의 하나님 말씀도 없다.

그래서 일찍이 아타나시우스 같은 감독은 "이 에스더를 성경에서 빼자”고도 했다.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것들 때문.

하지만 카르타고공의회(AD397)에서는 이 ‘에스더’도 정경(정통한 권위를 가진 성경)으로서 충분한 권위를 가진다고 보아 최종 확정했다. 그리고 후로도 이 ‘에스더’는 단 한 번도 성경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책이라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 유대인들에게는 이 ‘에스더’가 모세5경 다음으로 높이 평가 받는 책이 되고 있다.

왜일까? 왜 ‘하나님’이란 말 한마디 없는 그 책이 성경에 당당히 들어있을 뿐 아니라, 그 어떤 책 못지않는 사랑도 받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그 책에 ‘하나님’이란 말만 없을 뿐이지, 그 모든 스토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설명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에스더’라는 유대 여인이 페르시아 아하수에로의 왕비가 된 것부터 시작해서,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그 왕을 암살 음모로부터 구해낸 것, 그러자 그 모르드개를 못마땅하게 여긴 신하 하만이 유대인 학살 계획까지 세우지만 다 수포로 돌아간 것, 게다가 왕은 에스더가 마련한 잔치 참여를 앞둔 날 밤 잠이 오질 않아 역사책을 읽는데 하필 자신이 모르드개 덕으로 암살을 면한 부분을 읽고는 그 일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못해주었음도 알게 된 것, 그래서 왕은 그를 높여줄 생각으로 잔치에 나갔는데 그 자리에서 하만의 계략이 드러나는 바람에 왕은 당장 그를 그 자리에서 처형하고 모르드개는 왕 다음 자리에까지 높임으로 유대민족이 극적인 건짐도 받은 것...

정말이지 ‘에스더’를 읽다보면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그 믿음이 얼마나 그들을 용맹하게 했는지, 또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보호하셨고, 하나님의 공의가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너무나 확실히 보여주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이 ‘에스더’는 하나님이 인간 역사의 무대 위에선 부재한 듯 보여도 그 뜻과 도우심은 확실히 임재하고 계심을 보여준 중요한 책인 것이다. 그러니 이는 우리에게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그분의 역사하심을 신뢰하라는 교훈이 된다.

그런데 이 ‘에스더’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도 가진다. 믿음도 믿음이지만 필요한 지혜 역시도 이 책은 가르친다. 그건 바로 '하나님을 말하지 않고도 드러내는 지혜'에 관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때로 우리는 너무나 성급하게 세상 앞에서 '하나님'이란 단어부터 자꾸 말하고 싶어하지 않나? 그게 믿음이라고, 그게 없으면 전도가 아니라고만 여기지 않나?

하지만 아니다. 솔직히 그렇게 자꾸 거부감, 혐오감만 주는 건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만 버릴 뿐이고 전도의 기회만 잃을 뿐이다.

차라리 그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사랑하고, 얼마나 정직한지부터 보여라. 이미지에서부터 신뢰를 받으라. '알고보니 그 사람 교회 다니는 사람이었네~' 이 평가부터 받고나서 말을 하라. 그래도 늦지 않다. 이게 더 효과적이고 지혜로운 전도다.

특히 오늘날 이 지혜는 더 많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예수님도 “비둘기 같이 순결하기도 해야 하지만, 뱀같이 지혜로울 필요도 있다”(마 10:16) 하셨을까? 뱀 같은 교활한 동물에까지 비유하시며 지혜를 강조하신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라.

그래서 말인데, 최근 뉴스에 어떤 정당의 청년이 자기 PR포스터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나라 대한민국’이란 슬로건을 적었다가 종교색이 지나치다며 면직 처분까지 당했다는 소식에는 솔직히 좀 안타깝더라. 그 청년 마음이야 알겠다만 지혜롭지는 못했다. 괜히 그래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띠 두르고 온갖 인상은 다 찌푸리며 다니는 이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억울함만 자초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 우리도 좀 지혜로워져야 한다. 과연 지금이 하나님을 말로 전할 때인지 말 없이 보여줄 때인지, 강한 메시지가 필요한 때인지 좋은 이미지가 필요한 때인지, 섣불리 하나님 이름 드러내려다 오히려 하나님 이름만 망령되게 할 때인지 아니면 소중한 그 이름 지혜롭게 감추었다가 자연스러운 타이밍과 분위기에 드러나게 할 때인지, 이를 아는 지혜도 정말 이 시대엔 필요해보인다.

주여~ 부디 우리 믿는 자들에게 비둘기 같은 순결함에 뱀 같은 지혜도 더하소서. 이상, 그 귀한 믿음들이 너무 쓰레기 취급만 받는 것 같아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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