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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어차피 갈 천국, 조금만 더 있다들 가세요~ 조회수 : 870
  작성자 : 김종훈 작성일 : 2020-10-24



지난주, 또 한 분의 성도가 하늘나라로 부름 받아 가셨다. 처음 소식을 접하고는 나도 너무 놀랐는데, 가족들은 오죽했을까? 먼 나라 캄보디아의 선교사 아들은 또 얼마나 놀랐을까? 누구에게든지 언제든지 한번은 찾아올 날이라 예측은 했겠지만, 그것이 오늘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에, 막상 오늘이 되면 그 누구라도 마음은 길을 잃고 슬픔은 쏟아지는 법이다. 다시 한 번 큰 이별의 아픔을 당한 유족들에게 크신 주의 위로를 전한다.

그러고 보니 내 목회 16년 동안에도 참 많은 성도님들이 천국 가셨다. 물론 그 장례들은 다 내 손으로 집례했다. 그 어떤 장례도 호상(好喪)이라며 기뻐할 일은 없었고, 모두가 다 이별의 아픔만 컸을 뿐이었다. 천국환송예배 후, 함께 그분의 관을 들고 나갈 때면 나도 몰랐던 그 삶의 무게가 느껴졌고, 한 줌의 재가 되어 유골함에 담겨 돌아와 만졌을 때에는 나도 몰랐던 그분의 따뜻함도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더 떠남은 아쉽고 이별은 슬프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가끔 착각할 때가 있다. 어느 주일날, ‘? 그 권사님 어디 가셨지? 요즘 안 보이시네. 어디 아프신가?’ 혼자 그럴 때가 있다.

그런데 나중에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천국 가신 분임을 깨닫는다. 내 손으로 분명히 장례 집전을 했는데도 그런 착각까지 할 만큼 그분들의 자리는 알게 모르게 컸음이다. 그 자리는 누구도 대신 못 할 자리로 고스란히 남아있음이다.

특히 그분들은 대부분 우리 교회 기도의 용사들이었던 터라 더 아쉽다. 목회자인 나도 참 많이 사랑해주신 분들이라 더 아쉽다. 그러니 이젠 그 누가 날 그만큼 사랑해줄까? 그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할까? 솔직히 그분들 천국 가셨다는 기쁨만으론 그 아쉬움을 대체하기 어렵다.

어쩌면 다 나의 큰 누님 같은 분들. 누나 없이 자란 것이 유난히 아쉬웠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특히 그런 권사님들을 보면 다 내 누이 같다. 그래서 아이고 누님들 오셨네~”라고 불러드리면 그렇게들 좋아라하신다. 아무리 두 손을 꼭 잡아도 하나 전기(?)도 안 통하니 나 역시 너무 부담 없다.

또 그런 분들은 이따금 비닐봉지도 교회에 들고 오신다. 거기 보면 고구마도 들어있고, 상추도 들어 있고... 또 아무 때나 전화해서 밥 먹으러 오라고도 하신다. 된장국 하나 달랑 끓여 놓고서도 당당하게 오라신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가고 애틋하고 좋다.

그러니 부디 우리 누님 같은 권사님들, 집사님들. 우리 형님 같은 장로님들, 집사님들. 다들 만수무강하시라. 천국이야 어차피 가실 건데, 최대한 좀 늦게들 가시라.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들을 수 없지만, 우리 경로대학 어르신들의 힘찬 노랫소리가 그래서 좋다. “우리들의 인생은 칠십 세부터 언제나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칠십에 우리를 데리러 오면 지금은 안 간다고 전해주세요. 우리들의 인생은 칠십 세부터 언제나 즐겁게 살아갑니다. 팔십에 우리를 데리러 오면 아직은 바쁘다고 전해주세요. 우리들의 인생은 칠십 세부터 언제나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구십에 우리를 데리러 오면 재촉하지 마시라고 전해주세요. 우리들의 인생은 칠십 세부터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백세에 우리를 데리러 오면 천천히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제발 이 노래대로 되시라. 백십 세나 되시거들랑 이제는 생각해 보겠다하시라. 그래서 기도한다. 부디 갈렙처럼 팔십오세가 되어도 그 힘이 사십오년 전과 같으시길 바란다. 모세처럼 백이십세가 되어도 눈이 흐리지 아니하고 기력이 쇠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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