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내일’에 대하여 | 조회수 : 15166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21-03-05 |
“Tomorrow is not the secretly set fishnet into which we shall all inevitably swim and be caught”(‘내일’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헤엄쳐 가야하고, 결국은 그 안에 잡힐 수밖에 없도록 몰래 쳐놓은 물고기 잡는 그물이 아니다)라는 호켄다이크(Hoekendijk)의 글이 새삼 마음에 와닿는다.
그러므로 말인즉슨, ‘우리의 내일은 이미 정해진 삶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날이 아니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날’이라는 것인데, 전적으로 동감 되는 말이다. 그래서 누구도 그랬다. “‘운명’(運命)이란 것도, 이미 결정된 미래가 아니라 내 운(運)에 다시 내가 명(命)을 내리는 것”이라고.
그러니 아무리 내가 태어난 조건이 부실해도, 자란 환경이 부실하고, 가진 능력이 부실해도 이것이 내일의 부실한 결과로도 이어질 거라 예측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내 삶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내일을 만들 수 있음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공동체가 주일마다 살피고 있는 다윗도 그랬다. 그 역시 부실한 태생을 가졌다. 그는 정상적인 결혼 관계를 통해 태어난 아이가 아니다(시 51:5). 이새가 다윗의 아버지인 것은 맞지만, 그 이새의 아내가 다윗의 어머니는 아니었다. 다윗의 친어머니는 이새의 첩이었다.
게다가 다윗은 자신을 낳은 그 친어머니마저도 일찍 여읜다. 갑자기 고아가 된다.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시 35:14).
하여 다윗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이새를 따라 아버지 집으로 따라 들어간다. 그러니 그 어린 다윗에게는 얼마나 낯선 환경이었을까?(시 69:8)
게다가 가서 보니 이미 그 집엔 형들이 일곱이나 있었다. 그러니 그 삶에 마음 편할 날이 하루라도 있었겠나? 밥 한술이라도 맘 편히 먹었겠나? 맨날 눈칫밥만 먹었겠지. 형들로부터도 늘 왕따만 당했겠지. 콩쥐팥쥐 집안처럼 힘든 일은 늘 다윗 차지였을 것임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러니 “내 부모는 나를 버렸다”는 다윗의 고백은 백번 이해하고도 남는다(시 27:10).
그래서 결국 사무엘 선지자가 그 집을 방문했을 때에도 다윗만 쏙 빼놓은 것이다(삼상 16:11). 그 시간에 다윗은 홀로 들에서 양을 돌봐야 했다. 그러니 무슨 그에게 밝은 미래가 있었겠나? 오직 불행만이 그에게 정해진 운명인 듯 보였으리라.
하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왕으로, 성경 역사에 가장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결국은 자리매김하였다. 그가 자란 환경과 그에 대한 인생 평가는 완전 딴판이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가 일찍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시 27:10). 무엇보다 중심이 늘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 있었기 때문이며(삼상 16:7), 주어진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삼상 17:34-35), 잘될 때에도 지혜롭게 행하며(삼상 18:5,14,30), 고난을 통해서도 배우고(시 119:71), 언제나 여호와만을 목자 삼았기 때문이다(시 23;1). 또한 실수하여 죄를 지었을 때에는 그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모습도 가졌기 때문이다(삼상 22:22, 삼하 12:13). 그래서 그는 그의 내일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러니 당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윗처럼 당신도 당신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일구월심(日久月深/세월이 갈수록 더하여 감)의 마음만 가진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신앙), 하나님을 위한 소망(비전), 하나님을 통한 사랑(이타심)을 날마다 키워간다면, 그러면 틀림없이 당신도 잘되리라.
이전글 : 월요일 밤 황당 사건 | |
다음글 : ‘1분기도’ 7년째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