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안내(13) - 성년식 | 조회수 : 25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25-03-12 |
우리 교회가 스무 살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년 진행해온 성년식이 벌써 올해로 14년째를 맞습니다. 이는 저 역시도 이런 걸 교회에서 못해보고 얼떨결에 어른이 되다 보니, 어떤 정체성도, 책임감도, 사명감도 모른 채 40년 가까이 살아온 것이 너무나 아쉬워, 내가 목회하는 우리 청년들만큼은 꼭 해주고픈 마음에 오산교회로 부임하면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스무 살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한 인생의 마디 아닙니까? 단순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이나 직장으로 진출하는 시기임을 넘어, 정말로 이제는 아이가 어른이 되는 나이입니다. 부모 품속의 자녀가 품 밖의 자녀가 되는 때입니다.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자유와 권리가 한꺼번에 주어지고, 그동안은 해보고는 싶었지만 부모 눈치나 사회적 인식 때문에 못했던 일도 이제는 할 수 있고, 하겠다면 막을 수도 없는 나이가 된 때입니다.
그러니 이런 중요한 때에 어른됨의 의미를 분명히 가르치고, 그들을 축복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따라서 이에는 그 아이들의 가족은 물론이고, 우리 교회 모든 어른들도 함께 하여 격려자와 증인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교회가 진정 가족공동체라면 말입니다.
하여 저는 오늘 성년식에서 다음 세 가지를 하려 합니다. 첫째, 그 아이들을 마음껏 축복하는 일입니다. 혹 앞으로의 무한경쟁에서 낙오하여 자신감을 잃어버리기 전에,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절하하기 전에, 좋지 않은 가정 배경이나 부끄러운 자신의 성품과 능력만 탓하며 의기소침해지기 전에, 사회적 실패가 곧 인생의 실패라고 단정 짓기 전에 “너를 지으신 하나님은 그럼에도불구하고 너를 변함없이 축복하시고 동행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것부터 꼭 말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 힘으로 여태까지 왔으니까요.
둘째, 어른으로서 꼭 명심할 일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왜냐? 이 스무 살이 무조건적 자유의 시작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니까요. 자유는 언제나 책임도 수반함을 그들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는 성경도 동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 가데스바네아에 이르러 12명 정탐꾼을 가나안으로 보냈을 때, 내심 하나님은 그들의 성장한 믿음을 기대하셨지만, 그 중 10명의 정탐꾼이 “그 땅은 좋지도 않을뿐더러 우리 힘만으로는 결코 점령할 수도 없는 땅”이라며 백성들을 선동하자, 스무 살 이상의 성년들도 다 이에 동조해버린 그것이 너무 안타깝지 않습니까? 누구 하나 여호수아와 갈렙의 “할 수 있다”는 말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엄벌도 내려집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민 14:28-30). 그러니 이보다 더, 스무 살 성년 되는 이들에게 주는 따끔한 경고는 또 없으리라 봅니다.
셋째, 그래서 이 스무 살을 가장 의미있게 보내는 방법도 필요할 것입니다. 바로 이삭이 좋은 예인데요, 이는 이삭이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쳐질 때의 나이가 BC 1872년경, 즉 20세 쯤 되었을 거라는 학자들의 의견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그 무시무시한 명령을 충분히 거부할 자유도 있고 나이도 되지만, 순순히 결박당해 순종한 것입니다. 그 순종 까닭에 아브라함과 이삭은 ‘여호와이레’의 하나님도 경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스무 살의 순종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동시에 내 남은 인생도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는 방법이 아닐까? 싶은데요. 아멘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 얘기가 오늘 우리 교회 스무 살에게도 필요하다 싶으시면, 꼭 오셔서 ‘아멘부대’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엄청난 힘이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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