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진해(鎭海) | 조회수 : 1321 |
작성자 : 담임목사 | 작성일 : 2015-09-04 |
어느 목사님과의 만남을 위해 갑자기 달려 내려간 경상남도 ‘진해’(鎭海).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해시’였으나 이제는 창원시 ‘진해구’가 되어버린 진해. 그곳을 떠난 지 벌써 20년도 넘었건만 여전히 내겐 그 추억들이 너무 진해. 벚꽃향기 가득한 4월도 아니건만 장복터널을 지나 진해시가지를 눈에 넣는 것만으로도 그 배어있는 향기가 너무도 진해.
그러고보니 1993년 해군중위 계급장을 달고 첫 부임지로서 그 풋풋한 열정으로 목회했던 그 사역에 대한 기억도 진해. 첫 목회지 ‘해군통해교회(海軍統海敎會)’의 마당을 밟는 것만으로도 그 은혜가 벌써 진해.
예배당을 오르는 높은 계단을 보며 거기서 장병들과 함께 수도 없이 기념사진을 찍어댔던 그 즐거움도 진해. 본당을 잠깐 들러 앉아 기도하니 지금도 들리는 듯 장병들의 뜨거운 찬양과 기도소리의 생생함도 진해. 군목님도 만나니 나보다 20년 후배 목사님이지만 여전히 누군가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음을 보니 그 든든함도 진해. 더불어 군항부두에 정박한 군함들도 보니 여전한 그들의 든든함과 성실함도 진해.
옛 성도도 만나니 여전히 변함없이 맞아주시는 그 따스함이 진해. 오래간만에 만나도 마치 어제 만난 친구 같은 그 편안함이 진해. 지금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군복음화를 위해 힘쓰는 그 열정의 한결같음도 진해. 흐른 세월을 감안하면 이름도 이제 잊을만한데 얼굴을 보니 절로 생각이 나는 이 놀라운 나의 기억력도 진해.
어떤 권사님은 그 옛날 나의 사도행전 성경공부를 지금도 기억하며 “12장까지만 하고 떠나셔서 너무 아쉬웠다”며 “13장부터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시며 인사말이라도 그렇게 해주시는 바람에 정말 정성을 다해 성경공부를 인도했던 그 생생함도 진해.
그러고 보니 그 시절 성지 성빈 두 딸과 함께 했던 추억도 진해. 유치원을 처음 들어간 큰 딸 성지가 교회 유치원을 마칠 때쯤 교회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자마자 너무나 반가운 얼굴로 “아빠”하고 부르며 달려오면서 내 품에 안겼던 그 친밀함에 대한 추억도 진해. 집에 돌아와서는 언제나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와 율동을 어김없이 엄마 아빠 앞에서 보여주었던 그 안방공연의 추억도 진해.
물론 그곳에서 둘째딸 성빈이를 낳은 기억도 진해. 게다가 함께 진해에서 근무했던 여섯 분의 목사님들 중 세분의 사모님이 모두 다 임신하여 1994년 5월 21, 24, 27일 사흘간격으로 아이를 출생했던 재미난 기억도 진해.
하지만 사역에 바쁘다는 핑계로 아내와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했던 미안함도 진해. 사실상 가장 힘든 시절 육아는 아내의 몫일뿐이었고, 주의 일에 대한 사명을 명분으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역지인 가정을 많이 소홀히 했던 부끄러움도 진해.
계급이 낮아 군인아파트에도 들어가지 못하여 경화동 시장 기찻길 근처 두 칸 장방집, 김영삼 대통령 시절 그 이름처럼 마른장마로 비가 0.3(영삼)mm밖에 안 왔다던 시절, 옥상의 복사열에, 바람도 안 통하는 집에, 선풍기 하나에 의지하여 사는 세 식구를 하루 종일 집에 두고도 그 밤에 어디 시원한 에어컨 나오는데도 제대로 못 데려간 그 미안함도 진해. 겨우 한 것이라곤 옥상에 올라가 평상 깔고 모기장 덮어 잠을 청하는 정도였으니... 새삼 떠오르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너무 진해.
이렇게 추억에는 되살리고 싶지 않는 아픔까지도 남는 법. 그러니 이 다음에라도 아름다운 추억만을 남기고 싶다면 오늘부터라도 최선을 다해야겠지. 오늘도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내게 주어진 사명에,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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