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새벽기도회 | 조회수 : 1064 |
작성자 : 담임목사 | 작성일 : 2015-09-11 |
새벽 4시30분. 새벽기도회를 가려고 현관문 열어 나서니 오늘도 어김없이 조간신문부터 날 반긴다. 거참 부지런하기도 하시지.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으나 그 배달원의 성실함이 새삼 감동적인 새벽이다.
그 감동으로 교회를 향하니, 밤새 차분히 가라앉아있던 새벽공기를 으라차차 깨우는 기분까지 신난다. 홍해를 가르듯 요단강을 가르듯 모세의 지팡이와 제사장들이 멘 언약궤의 능력이 어땠는지를 알겠다. 이런 기분이라면 오늘 무슨 일을 만나도 다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교회 가까이오니 몇 성도님들이 교회를 향해 걷는 모습들이 보인다. 현대인들은 잠 기근에 산다는데, 결코 어젯밤에도 일찍 주무신 건 아닐 텐데, 이런 저런 고민으로 어쩌면 누웠어도 한참을 뒤척인 밤이었을 텐데, 그 지친 몸과 마음 때문에 ‘쉬겠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깨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음이 감동이다.
기도실에 들어가니 밤새 깔려있던 빈 방석은 이미 반 이상 손님을 맞았다. 그 작은 쿠션으로 기도자들의 무거운 엉덩이를 감싼다. 흔들기 좋게, 오래 앉아있기 좋게, 배기지 않게...
조용한 묵상음악도 흐른다. 참 오랫동안 우리 교회가 사용해온 음악. 바꿀 때도 됐지만 그대로 사용한다. 음악이 편하고, 거슬리지 않고, 익숙하니 기도에 집중하기 수월해서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새벽기도회 분위기는 충분하다. 새벽기도회는 외적분위기를 굳이 갖추지 않아도 기도자들의 내적 동기만으로도 워낙 강렬하다.
이윽고 5시. 조명이 켜지고, 강단에 올라 기도하고 눈을 떠 그 새벽에 나온 동지들이 누구인지를 얼른 한 바퀴 살핀다. 역시 나올만한 분들이 나오셨다. 왈칵 고마움이 밀려온다. 물론 몇 분은 ‘아니 저분도 새벽기도회를?’ 이런 분도 계심에 놀란다.
찬송 한곡을 신나게 부르니 잠겼던 목소리가 뻥 뚫린다. 찬송의 한 호흡이 내 안의 모든 장기(臟器)까지도 깨운다. 찬송하기 좋도록 그 이른 새벽에도 피아노를 눌러주는 반주자가 있음이 고맙다. 물론 그분 또한 ‘이렇게라도 하루 새벽을 지킬 수 있음이 감사하다’ 여기겠지만...
찬송을 이어 다시 드리는 합심기도. 교회와 나라와 민족, 선교지들을 위해 기도한다. 이 기도소리가 교회의 담장을 넘기를 소망한다. 이 기도들이 이 땅을 회복시키기를 소망한다.
그러고 보니 그 새벽 강단에도 ‘일천번제예물’이 올라와있다. 어떤 분은 59번째, 어떤 분은 109번째, 어떤 분은 187번째 예물이란다. 대부분 지난 부활절, 교회가 일천번제를 선포한 이후 자신이 참여하는 예배 때마다 성실히 예물 드려온 분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떤 예물은 벌써 460번째다. 엥? 아마도 교회의 선포에 앞서 개인적으로 먼저 시작하신 분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 기도제목들에 다시 눈이 간다. “간절히”, “속히”라는 부사들이 내 마음을 붙든다. 그 기도를 읽는 내게 애절함이 인다. 그러니 당사자들은 얼마나 더 애절할까?
이제 말씀을 전하는 시간. 전하는 나 역시 그 어느 예배보다도 꾸밈없이 편안하다. 순도 100%의 묵상만을 전한다. 역시 말씀은 그 자체가 권세이다. 그 말씀을 나 역시도 전하면서 듣는다. 삶의 전쟁터로 나가는 이들을 위한 사령관의 작전 지시로 받는다. 그리곤 다시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의 세계로 나아간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당에 나오니, 날이 환해졌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도 얼굴도 환한 모습으로 이 하루를 살기를 소망한다.
그래서인지 다시 목양실로 올라오는 기분이 그만이다. 역시 새벽기도회는 나올 땐 죽을 것 같아도, 나오면 살 것 같은 힘을 준다. 물론 있다가 좀 피곤해질 순 있을 거다. 하지만 그게 두려워 새벽에 주시는 은혜를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다. 그러니 기도하기 좋은 계절 가을,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다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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