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하나님의 '어부바' | 조회수 : 1875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16-01-29 |
‘어부바’, 이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참 정감 있는 말이다. 힘 되는 말이다. 국어사전은 이 말을 “어린아이가 업어 달라고 하거나 어린아이에게 업히라고 할 때 하는 말”이라고 풀이하는데, 누구나 웬만하면 이와 관련한 어릴 적 기억이 다 있다.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 졸리고 피곤할 때 우리의 엄마 아빠는 언제나 덜퍼덕 쭈그리고 앉아 그 넓은 등을 선뜻 내주며 ‘어부바’하셨다. 그러면 못이기는 척 나는 그 등에 업혔고, 부모님은 나를 자신의 등에 최대한 밀착시키며 양손가락을 끼신 채 내 엉덩이를 받쳐주셨다.
그렇게 되면 어찌나 그 등이 편했던지 스르르 난 잠이 들었고 그 잠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어떨 땐 집에 와서도 어머니는 날 깨우지 않으시고 그냥 재우셨다. 그 어떤 자가용보다 편했던 바로 그 어머니의 등. 갑자기 생각이 나니 미치겠다. 날 좀 업어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미치겠다.
부산(釜山)이라 거리도 멀고, 산적한 일들도 많아 갈 시간도 없다. 이번 설명절도 선교여행이 잡혀있다. 가봤댔자 그렇다고 업어주실 어머니도 아니다. 이미 내 어머니는 나의 어릴 적 그 어머니가 아니다. 이젠 늙고 야위어서 이 아들이 업혔다간 쓰러지신다. 차라리 내가 업어드려야 할 판이다.
그렇다면 이 다 큰 어른을 누가 업어주랴. 어리광 부리고 싶고, 편히 기대고 싶을 때는 누구에게 기대랴.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만 생각해보니 내겐 하나님뿐이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등뿐이다. 언제나 크시고 언제나 넓으신 하나님 아버지. 그 등에라도 우선 안겨야 할 판이다.
그래서 말씀이 참 고맙다. 전에도 이 말씀을 주일예배 때 전했다. 출33:14과 출33:23 말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친히 가주시겠단다. 나더러는 쉬라신다. 네가 내 등을 보겠지만 얼굴은 안 보일 거란다. 그렇다면 이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우릴 업어 주시겠다는 약속이 아닌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정말 그 등은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정말 신기한 것은 이 '어부바'만 되면 나는 자면서도 길을 간다. 마치 자동차를 내가 운전하면 잠시도 졸 수 없지만, 누가 대신 운전해주는 차를 타면 잠들어도 계속 목적지를 향해 가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어부바 역시 그러하다. 먼 길도 쉽게, 위험한 길도 안전하게.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보내는 바로 이 주일이야말로 하나님께 ‘어부바’하는 시간이 아닐까? 여전히 나의 갈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하나님께 ‘어부바’ 함으로, 쉬면서도 가는 시간이 아닐까? 그러므로 예배는 “나는 멈추었으나 하나님이 대신 친히 가주시는 시간”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를 이 자리로 초청하셨으리라. 친히 우리를 업어주시려고. “올라타라. 너는 쉬어라. 내가 친히 가줄테니...” 이게 주안에서 누리는 안식의 비밀이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안식하자. 예배를 통해 안식을 누리자. 봉사와 섬김까지도 안식이 되게 하자. 성도와 나누는 교제까지도 안식이 되게 하자.
주님은 그 섬김이 또 다른 노동이 되는 걸 원치 않으신다. 쉬는 날 ‘쉬는 것’보다 ‘즐겁고 행복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참 쉼일 수 있듯이, 예배하고 섬기고 봉사하고 교제하는 것으로 이 하루가 더 즐겁고 행복하기를 하나님은 기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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