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수도원에서의 몇 묵상 | 조회수 : 1232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16-04-15 |
지난 주간 아내와 함께 또 한 번 시간을 내어 찾은 옥천의 한 수도원. 공기는 맑고 하늘은 높으니 내 영혼도 더불어 맑고 높아졌다. 깊은 계곡 사이로 흐르는 시원한 냇물만큼이나 내 영혼의 계곡 사이로 흐르는 냇물도 그득했다. 내 눈을 가득 채우는 화려한 봄꽃의 향연만큼이나 내 영혼도 말씀의 향연으로 행복했다. 이래저래 아웃풋(Out-put)으로만 고갈되어 있던 내 영혼에 신선한 인풋(In-put)의 시간도 되었던 바, 거기서의 몇 묵상들을 우리 성도님들과도 나눠본다.
1. 성숙한 신앙은 ‘내가 주님을 위해 뭘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통해 뭘 하시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것’이다.
2. 1억을 주께 바치는 것이 어려울까? 고린도전서 13장 4절의 "사랑은 오래참고"가 더 어려울까? 언뜻 생각하면 1억 바치는 것이 더 어려울 것 같지만, 실상은 오래 참는 게 더 어렵다. 왜냐하면 1억을 드리는 것은 내가 가진 것으로 내가 결단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오래 참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자가 아니면, 진정한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억을 바치는 것은 그것으로 나를 드러낼 수도 있고 적절한 칭찬도 따를 테지만, 오래 참는 일은 오히려 나를 숨겨야 하는 일이며 칭찬은커녕 바보란 소리만 더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사랑은 '나를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너를 위해' 하는 것이다. 내가 덕 보려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중심은 항상 상대에게만 있어야 한다.
4. 사랑에는 '이중성'(二重星)이 있다. 물론 사랑 하나면 모든 게 충분하다. 근심할 일이 있어도 기뻐하고, 가난해도 상대를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지만 다 가진 자로 살 수 있다. 사랑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르다. 하지만 사랑은 늘 배고픈 것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보고서도 헤어지면 또 보고 싶은 게 사랑이다. 끝없는 갈망의 연속이다. 해도해도 부족하다 느끼는 게 사랑이다. 이미 많은 것을 주었지만 더 줄 것을 찾는다. 못 다한 사랑만 생각난다. 그렇다면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그래야지 않을까?
5. 하나님의 완전성이 ‘예수’라는 불완전성으로 축소되어 오셨다. 하나님의 우수성이 ‘예수’라는 모자람으로 축소되어 오셨다. 하나님의 무한함이 ‘예수’라는 유한함으로 축소되어 오셨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죄를 뒤집어 쓴 예수로 오셨다. 그분이 내 안에 오셨다. 오로지 날 사랑하셔서 날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6. 다윗은 왜 골리앗 앞에서 사울왕이 선사한 갑옷과 칼을 거부했을까? 맞지 않아서? 필요가 없어서? 아니다. 그보다 다윗에겐 하나님 한분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Solo Dios Basta!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라면 공격용 칼도, 방어용 갑옷도 되어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7.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8. 가장 친근한 대화는 사소한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주제가 있고, 목적이 있고, 요구가 있는 대화는 친근한 대화가 아니다. 가장 친근한 대화는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난 주님과 어떤 기도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9. 죄의 중력(重力)은 바윗덩어리보다 무겁다. 내 발을 땅에서 도무지 들지 못하게 한다. 아예 나를 묶어버린다. 그 죄가 나를 근심, 분노, 절망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양력(揚力)은 깃털보다 가볍다. 그 어떤 환경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를 주신다. 중력에 묶여 살던 내게 무중력의 마음을 주신다. 추월하려만 했던 마음에 초월의 마음을 주신다.
10. 오늘도 주님은 날 위해 말씀의 식탁을 차려주신다. 친히 맞상하자 하신다. 그러니 이미 다른 것에 배불러서 그 식탁 물리는 일은 없게 하자. 주님과 맞상하는 그 영광과 기쁨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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