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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은메달과 동메달 조회수 : 1359
  작성자 : 김종훈 작성일 : 2016-08-12



올림픽 같은 큰 경기가 치러질 때면 꼭 나올법한 장면이 이번에도 나왔다. 바로 은메달을 차지한 선수와 동메달을 차지한 선수가 보여준 표정의 차이인데, 이번에 펜싱의 박상영 선수의 금메달 시상식도 그랬다.

박상영의 표정이야 말할 것도 없이 밝았다. 10-14로 패색 짙었던 경기를 단숨에 역전시켜 15-14로 이겼으니 그 감격이야 말할 것도 없을 터. 게다가 그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시절을 보낸 데다, 칭찬 한 번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다 하고, 무릎 부상마저 당해 코치진들조차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가 그런 역전의 용사로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으니 그 주인공 된 기쁨이야 오죽했을까. 그래서 그는 시상식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그런데 그에 비해 은메달을 딴 헝가리의 게자임레 선수의 표정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두워도 너무 어두웠다. 명색이 세계 제2위의 자리를 차지했음에도 표정은 마치 예선 탈락한 선수만 같았다. 오히려 동메달을 딴 프랑스의 고티에그뤼미에 선수의 표정이 더 좋았다.

왜일까? 왜 올림픽에선 2등이 3등보다 더 죽을상일까? 물론 이해는 된다. 게자임레 선수는 나이도 박상영보다 2배 많고, 경험도 훨씬 많고, 그간의 성적도 월등했다. 그만큼 베테랑이다. 게다가 그는 세계랭킹 1위인데, 박상영은 고작 21위다. 그러니 메달의 색깔보다 자존심 손상이 더 컸을지 모른다. 게다가 다 이긴 경기를 놓쳐 버렸으니...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세계 2위의 자리에 오른 선수의 표정치고는 너무나 실망스럽다. 게다가 알고 보니 그는 동메달도 은메달도 다 따봤는데 금메달만 못 따봐서 이번에 그 금메달로 자기 개인 욕심에 구색을 맞추려했단다. 게다가 그는 난 이제 은퇴할 것이기에 이번 경기로 더 이상 배울 교훈도 없다"고까지 했다. 세상에 이런 망발이... 인생이란 게 뭐 유독 올림픽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던가? 이런 결과지상주의는 올림픽 정신에도 정면으로 위반된다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 연구자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시상대 표정을 연구해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동메달을 딴 선수들이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훨씬 더 행복해했음을 밝혀내었다.

이게 바로 비교정서’(比較情緖)라는 것이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과 비교하면 상향비교,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면 하향비교인데, 상향비교는 부정적 정서를, 하향비교는 긍정적 정서를 경험시킨다는 논리이다. 다시 말해 은메달을 딴 선수는 목표했던 금메달을 따지 못한 아쉬움과 실망감이 더 커서 부정적 정서를 만들고, 동메달을 딴 선수는 자칫하면 메달을 못 딸 수도 있었는데 정말 다행이란 마음이 더 커서 긍정적 정서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렇게 2등과 3등의 정서는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 은메달 역시 그간의 눈물과 땀의 아름다운 결과인데도, 마치 그간의 노력이 허사이기나 한 듯 여기는 것은 본인 정서에도 물론이거니와 그를 응원해주고 세금으로 지원해준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국민의 바람은 성적에만 있지 않다. 개인이나 영광 받으라고 올림픽에 내보낸 것이 아니다.

이번에 보니 에티오피아의 수영 선수 로벨키로스하브테는 꼴찌한 선수로 더 유명해졌다. 그 어느 관중도 국민도 야유를 보내기는커녕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심지어 “100미터는 내게 수영하기에 너무 먼 거리였다했는데도 그 말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수영 불모지 에디오피아의 개척자가 된 것만으로도 그의 사명을 다했다고 본 것이다. 네팔의 수영 선수 카우리카싱 역시 대지진의 상흔을 딛고 출전한 것만으로도 희망이 되었고, 국기도 없이 오륜기를 가슴에 달고 출전한 난민 선수들 역시도 성적과는 관계없는 희망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국민은 국민을 대표해 뛰는 선수들에게 꼭 1등만을 주문하진 않는 것 같다. 누군가 우리의 희망봉’(Cape of Good Hope)이 되어주기를 차라리 더 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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