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고향(故鄕)과 본향(本鄕) | 조회수 : 1210 |
작성자 : 김종훈 | 작성일 : 2016-09-09 |
지난주에도 또, 한 분의 장례식을 인도하면서 다시금 우리의 고향과 본향에 대해 묵상해보았다. ‘고향’(故鄕)이란, 말 그대로 ‘태어나 자란 곳’을 의미한다면, ‘본향’(本鄕)은 ‘고향 이전의 고향’을 의미할 터. 그러니까 내 고향은 부산이지만, 내 본향은 그 전부터 있었단 얘기다.
물론 고향도 좋다. 아무리 타향살이가 더 길고, 더 익숙하고, 아는 사람 또한 여기가 더 많아도 고향을 대신할 순 없다. 아무리 ‘든 정’이 깊어도 ‘난 정’을 따르진 못한다.
그래서 지금도 어머니 품이 그립고, 뛰어놀던 골목길이 그립다. 자전거 타다가 머리 쳐 박았던 논두렁이 그립고, 외삼촌만 믿고 탔다가 이빨을 두 개나 잃었던 리어카가 그립다. 거머리 달라붙던 논과, 나무하러 다니던 산과, 장닭에 쪼여 울었던 대문 앞과, 새벽 2시에 눈비비고 일어나 두부 만들기 위해 돌렸던 맷돌과, 따가운 눈 참으며 쇠죽을 끓이던 큰 솥과 아궁이 그리고 멱 감던 마을 앞 개울물도 그립다.
그런가 하면 개 헤엄치던 부산 영도 앞바다와, 달동네 오르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했던 허름하고 을씨년스런 연탄 창고도 그립다. 친구들과 다방구하던 전봇대가 그립고, 여름날 자리 깔고 잠 청했던 옥상과, 겨울날 담벼락에 쌓인 눈을 긁어 삭카린 타먹던 그 맛 또한 그립다. 물론 돌아가신 아버지의 엄함도, 홀로 계신 어머니의 유별난 아들 사랑도 그리운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몇 년 전 그곳을 다 가보았다. 짧게나마 얼마 전엔 어머니한테도 아버지한테도 다녀왔다. 그랬더니 정말 마음이 푸근하고 좋았다. 오래 묵은 체증이 내려앉는 것 같았고, 감당할 수 없었던 무거움 또한 가벼워지는 듯 했다. 그렇게 인간은 고향을 통해서만 진정한 내려놓음과 가벼워짐을 경험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본향은 말할 것도 없을 게다. 그 본향이야 말로 진정한 내려놓음과 진정한 가벼움을 경험시킨다. 새털의 무게조차 느끼지 못하는 곳, 그 무엇도 어깨에 올려놓을 필요가 없는 곳이 본향이다. 그렇다면 거기가 어딜까? 어디가 그런 데가 있을까? 바로 하늘나라 천국이다.
사실 우리의 생명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육신의 부모의 씨와 배를 빌려 잉태하고 존재하기 전,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먼저 잉태되고 존재되었었다. “창세전부터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를 예정하셨다”(엡 1:4,5)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본향이다.
그래서 언젠간 우리도 고향 떠난 연어처럼 다시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는 말도 그래서 진리이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을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성경 히브리서 또한 이렇게 말한다(히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의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다시 추석 명절이다. 그리운 고향과 부모를 찾는 계절, 고속도로가 주차장을 방불하여도 기어코 가려는 이들이 도로에 늘어서는 계절이다. 참 귀하고도 아름답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본향 또한 곧 그렇게 찾을 때가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머잖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우리 성도님들만이라도 고향과 부모 찾는 이 여행길이 본향과 하나님 또한 찾는 연습이 되었으면 좋겠다. 매년 이 일을 반복하면서 결국 영원한 본향으로도 돌아갈 존재임을 확인하는 기회도 되었으면 좋겠다. 어릴 적 추억 깃든 골목길, 휘엉청 보름달, 맛난 송편, 푸근한 부모의 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 곳, 일시적인 곳이 아닌 영원한 곳, 과거의 추억이 아닌 미래의 상급이 있는 곳, 그 곳에 대한 진정한 그리움으로 더욱 가득한 여행길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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